제35집: 감사의 생활 1970년 10월 2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66 Search Speeches

현실을 부정하고 내일을 긍정해야

이러한 타락한 현실의 환경에 있어서는 행복의 여건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훌륭하고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그 일생 과정을 분석해 보면 행복이라든가 가치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생활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인생관을 가지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러한 사람은 극히 적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일에 대한 희망을 중심삼고 오늘의 그 생활에 대해 생명력을 자극시킬 수 있는 원동력을 보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대문에 오늘날 타락한 이 세계에 있는 인간들은 내일의 희망의 세계를 불가피하게 고대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인 것을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미래를 중심삼고 인간을 위하고 싶었던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인간이 위함받을 수 있는 그 자리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에게는 반드시 그 자리를 다시 찾아가야 할 운명길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이러한 운명길을 찾아가려니 오늘날 우리는 현실 생활에서 고통과 투쟁의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탄한 생활을 엮어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혁명을 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의 생활은 혁명입니다. 새로이 개발해야 하는 개척자의 노정을 거치지 않고는 인간이 이루어야 할 희망의 세계에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원리 말씀으로 말한다면 탕감노정을 거쳐서 복귀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탕감복귀노정은 순수하게 어떠한 공식 법도를 따라가는 길이 아닙니다. 개척과 투쟁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개척은 개인의 생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계적인 개척입니다.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척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 투쟁도 개인적인 투쟁이 아니라 세계적인 투쟁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인간들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의 삶 그 자체는 세계적인 전쟁의 과정에 서 있는 것이요, 세계적인 개척의 노정에 서 있는 것이요, 세계적인 새로운 혁명의 대열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 인간들은 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 시조가 자기를 중심삼고 내일의 희망을 망각하는 자리, 즉 자기를 긍정하고 내일을 부정하는 자리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의 자기를 부정하고 내일을 긍정하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미래를 긍정하고 오늘을 부정할 수 있는 혁명의 기수가 되지 않고는 가치가 없는 인생이 될것이며, 인생의 모든 면에서 비애의 탈을 벗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모르지만 타락했다 할진대는 , 현실을 긍정하고 미래를 부정하였던 인간 시조의 잘못을 되풀이해 가지고는 타락권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를 긍정하는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류의 조상이 현실을 긍정하고 미래를 부정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를 긍정할 수 있는 새로운 내용을 각자가 갖추지 않고는 인생의 바른 길을 찾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현실을 얼마나 부정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부정의 한계점이 어디냐? 그것이 오늘날 종교 혹은 타락세계권내에서 우리가 찾아가는 새로운 미래의 여건을 중심삼은 그 권내에서의 부정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권내에서의 부정 가지고는 새로운 미래의 세계를 찾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권외까지 부정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권내의 부정권을 승리의 결과로 가져 올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바라는 이상이 어떤 것이냐? 현실을 긍정하는 생활이 아닙니다.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을 부정하는 생활인 것입니다. 현실을 부정함과 동시에 미래의 긍정을 공고화시키는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인들이 현실을 긍정하고 미래를 부정하는 입장과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를 긍정하는 입장, 이 두 입장 중에서 어느 쪽이 더 강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를 긍정하는 입장이 무엇보다도 더 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만이 미래의 사랑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중심삼은 생활권내에서의 사랑을 중심삼고 자기 자체를 찾아 가지고는 아담 해와가 저지른 그 한스러운 타락으로 말미암은 고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인들이 지금까지 고난과 시련의 길을 쉬지 않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현실을 긍정하고 미래를 부정하였던 선조들의 잘못을 다시 되풀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역설적인 방법을 통해서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를 긍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가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