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집: 인간의 가치와 천국의 기원 1971년 11월 2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73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사'의 교육

그러면 사랑의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했던 아담 해와의 사랑의 교육 기준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없었다면 하나님의 이상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 사랑의 교육 기준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여러분, 천국가고 싶지요? 그러나 천국가서는 그런 교육을 못 받습니다. 이 땅에서 교육을 받고 살다가 가야 되는 거라구요. 이 땅에서 그 교육을 안 하면 큰일나는 것이요, 안 받으면 큰일난다는 거라구요. 그 교육이 무엇이냐? 어떤 게 교육이예요? 여러분, 알아요?

그러면 아담 해와가 교육을 받으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되느냐? 부모와 자식간이니까 부모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가게 되면 어디까지나, 언제나 따라가야 된다구요. 부모가 산에 오르면 산으로 따라가고 골짜기로 내려가면 골짜기로 따라가고 굴속으로 들어가면 굴속으로 따라가야 돼요. 언제나 부모와 같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안 보면 보고 싶겠어요, 안 보고 싶겠어요? 만일에 하나님이 아들과 떨어져야 한다면 떨어질 수 있겠어요?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보고 싶어한다는 거라구요. 절대적인 분이기에 좋아해도 절대적으로 좋아한다는 겁니다. '뭐 하나님,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고, 거 어디 있겠으면 있고 말겠으면 말고...' 그러면 되겠어요? 절대적이어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이들의 생명의 모체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부모는 그 아이의 생명의 모체지요? 생명을 키워 준다고요. 생명의 모체요. 사랑의 모체요, 보호의 모체입니다. 생명을 보호해 주고, 키워 주고, 사랑해 준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행복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이거예요. 보호권이 성립 안 되면 생명이 위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생명이 위협받으면 사랑도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죽게 되었는데 사랑이 성립되겠어요? 안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보호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호권을 만들었는데 보호해야 할 것이 누구냐 하면 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생명의 기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고 천사장의 보호를 받아 가지고 사랑의 교육을 받고 있는 도중이었던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그 교육을 다 받았더라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을 것이냐? '내가 너희를 이렇게 사랑했으니, 해와도 이렇게 사랑했고 아담도 이렇게 사랑했으니, 너희 서로서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보다 더 사랑하라'고 명령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 둘이서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한 것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길이 어떤 길일 것이냐? 그들이 성숙하여서 둘이 서로를 사랑하는 길 외에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럼 왜 하나님보다 자신들끼리 더 사랑해야 되느냐? 서로가 더 사랑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를 더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그 집안이 잘되고, 더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주체적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크다는 것을 더더욱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너희가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도 너희들끼리 더 사랑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신다는 거예요. 그것이 신랑 신부의 사랑입니다. 결국 그 사랑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에 못지 않은 사랑인 것입니다.

거기에서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던 것, 즉 종적인 사랑이 비로소 횡적인 인연의 사랑으로 출발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종적인 사랑이 약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종은 주체요, 횡은 상대이기 때문에 이 상대적 가치가 보다 가치 있게 되면 그 주체는 보다 큰 가치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 자체가 서로 성숙해 가지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보다 자기들끼리 더 사랑하는 것을 좋아하시기 마련인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주체이기 때문에, 상대가 멋진 사랑의 실체로 화하면 주체는 보다 큰 사랑의 가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거기에서 불행을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은 아담 해와가 서로 사랑 하기를 얼마나 바라셨겠습니까?

하나님 자신은 한 몸입니다. 이성성상(二性性相)의 주체로 계시기 때문에 자체내에서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생각으로는 '남성적 주체의 자리다. 여성적 대상이다' 해 가지고 사랑을 느낄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남성과 여성이 분립된 입장에서는 자극적인 충격을 느끼지는 못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아담 해와가 하나님 자신을 제쳐 놓고 자기들끼리 더 충격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볼 때, 사랑의 주체되시는 하나님은 나빠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 둘이 하나된 그 자리를 상대로 해 가지고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주체자이시기 때문에, 그 상대가 보다 가치적인 사랑을 느끼게 될 때, 하나님도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를 중심한 사랑의 제일 법도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랑의 교육을 받지 않고는 그 자리에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