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집: 만민을 위하여 오신 주를 모시는 자가 되자 1956년 12월 2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09 Search Speeches

예수의 강림 목적과 유대백성의 불신

그러면 이제, 무형의 아버지께서 인간과 만물을 지어 놓으시고 기쁨과 영광을 누리시려던 창조 이상, 만물 앞에 인간을 내세우시고 모두가 선의 이상에 취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자랑하며 동고동락하기를 소망하셨던 하나님의 창조 이념은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마음 속에 한으로서 남아졌는데, 이것을 풀어드릴 사명을 가지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4천년 수고의 역사를 대신하여, 인류를 대신하여, 만물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내적인 원한의 핵심을 실체적으로 풀어드리기 위하여 오신 분이 누구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를 모셔야 했던 존재, 예수를 대망하였던 존재, 예수와 영원히 동락할 수 있었던 존재는 어디에 있었던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 사무친 원한의 심정을 대신한 분이요, 무형의 실존체로 실존하시는 하나님의 실체상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원한을 실체적으로 풀어드릴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당시의 유대백성들이 알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위로받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내적인 섭리의 뜻을 알아서'이 분은 4천년 동안 하나님이 서러워하셨던 그 마음을 풀어드릴 수 있는 분이요, 아버지가 찾으시던 영원한 소망의 존재'라고 찬양하면서 하나님의 소망의 심정과 동감할 수 있고 그 예수를 모실 수 있었던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무형의 하나님의 서러움은 유형의 인간을 통해서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서러움과 만민의 서러움을 대신할 수 있는 분이 예수였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평생 동안 기쁨의 날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4천년 동안 흘리신 하나님의 서러움의 눈물이 그의 마음에 사무쳐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만민들이 예수와 하나되어 하나님의 서러움을 풀어드려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누구 하나 예수님의 서러움을 체휼하여 예수 앞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의 일생을 처음에서부터 끝까지 살펴볼 때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그래서 그러한 원한의 자국이 오늘날의 우리에게까지 연장되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메시아를 바라고 있던 이스라엘민족에게는 하늘의 독생자, 하늘의 황태자로 태어나신 예수가 이렇듯 서럽고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당신을 모실 수 있는 하나의 존재를 찾으셨다는 것입니다. 찾으시되,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찾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을 대신하여 찾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서러움에 동참하고, 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수고를 대신하고, 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소망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를 찾으셨으나 마굿간에서 태어나 30여 평생을 거쳐 십자가의 고개를 넘으실 때까지 그런 존재를 하나도 찾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에 죽은 예수는 만민이 모시는데,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갖고 오셔서 인간들에게 그 사랑을 옮겨 줄 수 있는 살아계신 예수는 어찌하여 아무도 모시지 않았던가. 그 책임은 인간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서러움을 풀어드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수고의 노정을 제하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였는데도 불구하고, 소망의 동산을 건설하기 위해 하나님의 소망의 실체로 오셨던 예수였는데도 불구하고, 그 예수의 서러움을 붙안고, 그의 고난을 자기 일신에 지니고 그의 소망을 느끼어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우리 선조들의 죄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오늘의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나님의 모든 원한을 예수의 일신을 통하여 풀려고 하던 일이 우리의 선조들이 책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연장된 연고로, 하나님의 서러움은 예수님의 서러움으로, 하나님의 수고는 예수의 수고로, 하나님의 소망은 예수의 소망으로 남아졌고,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은 성신에게까지 미쳐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