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6집: 나라를 책임진 사람 1989년 02월 06일, 한국 한남동 공관 Page #310 Search Speeches

청년시절의 일"

아이구, 이런 실례가 어디 있나? 아줌마들 앞에서 우리 사모님 욕먹게 되었네. (웃음) 할 수 없잖아요. 이러고 저런 것 다 아는 게 아니예요. 나 그런 사람입니다. 종교 지도자는 솔직해야 해먹는 거예요. 아줌마들 대님을 맬 때 어디가 위로 가는지 알아요? 교수님들 모르지요? 어디가 위에 가는지 알아요? 솔기 있는 데가 위에 가요, 솔기 없는 데가 위에 가요? 「솔기 있는 데가요」 그게 왜 그래야 돼요? 「……」 (웃음)

내가 바느질도 잘 합니다. 뜨개질도 잘 하고, 나는 못 하는 게 없어요. 우리 누나들 시집갈 때 내가 다 뜨개질도 가르쳐 주고 다…. 책 보면 알잖아요, 책 보면.

이런 말을 왜 하느냐 하면, 아까 처음 얘기했듯이 문선생을 모른다 이거예요. 지금 나도 내가 모르고 있는데 누가 알아요? (웃음) 내가 나를 모르고 있어요. 명령만 내리게 되면 벼락이예요. 김일성이 잡으러 가라면 혼자서 김일성이 잡으러 가라 하는 하나님 명령만 있으면 가는 거예요. 그래, 내가 나를 모르는데 누가 알아요? 알겠어요? 그런 사람 믿을 수 없다 그 말이예요. (웃음) 아니예요! 그렇잖아요? 그거 어떻게 믿나요?

우리 성진이 어머니도 같이 살다가 이 쌀을 한 트럭…. 내가 옛날에 가시마구미(鹿島組)의 전기부에 출근했었는데, 그때 서울에는 쌀이 없었어요. 해방 직후에 쌀 구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저 연안 백천지방에…. 거기가 쌀 생산지가 아니예요? 벌써 가을이 되자 거기에 쌀을 한 트럭 사 놓았지요, 몇 사람이.

아, 이거 떡, 쌀이 떨어져서 말이예요, 집사람만 남겨 놓고…. 그때 우리 성진이가 난 지 40 며칠 되었어요. 세상에 친척이 있나, 새 애기 낳아 가지고 지금 아버지를 하늘같이 믿고 살고 있는데, 배낭을 메고 쌀을 가지러 가는데 `북한 행! 삼팔선을 넘어라' 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못넘을 겁니다. `집은 내가 책임진다' 하는 거예요. 그렇게 될 때 우리는 그걸 알기 때문에 꿈에도 생각지 않아요. 그 길로 배낭을 지고 평양으로 가 가지고 그 계속이 지금까지입니다. 그거 믿을 수 있어요?

이래 가지고 남편만 믿던 우리집사람이…. 우리집사람은 나를 참, 세상에 남자 하면 나 같은 남자 없다고…. 이거 내 자랑이 아닙니다. 너무 좋아서 그렇게 반대한 거라구요. 또 최씨예요. 여기 최씨 없어요? (웃음) 최가가 아주 뭐…. 뭐 최씨 앉았던 데는 풀도 안 난다는 말이 있잖아요?

아, 이래 가지고 6년 동안…. 내가 약혼할 때 벌써 다 얘기한 거예요. 약혼할 때 다 그렇게 과정을…. `나는 이 7년 동안을 혼자 이런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데 당신이 이해하겠느냐?' 하고 다 문답을 했는데…. 그때야 뭐 신랑 만나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드렸던 거예요. 왜정 때 감옥에 들어가던 열성분자거든요. 벌써 영계에서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예요.

그 색시감이 좋다고 해서 평안도 전체 부잣집 아들들을 전부 소개해야 이 성진이 엄마가 전부 다 보이코트해 버렸어요. 벌써 기도해 보는 거예요. `이 사람 어떻소?' 하고 기도해 보면 영계에서 다 보여 주는 겁니다.

그러다가 우리 사돈의 팔촌, 팔촌이 아니고 이모니까 몇 촌이 되나요? 7촌, 촌수로 보면 한 단계 떨어져야지요? 아, 이모가 떡 나타나 가지고 말이예요. 이분이 유명한 분이지요, 중매자로서는. 내가 작은 아들이거든요. 아, 이거 작은 조카 중매는 자기가 한다고…. 내가 농도 좋아하거든요. 그 할머니를 내가 데리고 놀려먹는 게 참 재미있다구요. (웃으심) 밤에 배고프면 국수도 사 나르고 말이예요. 아, 중매 잘한다면 한번 해보시라고, 이래 가지고….

거기가 우리 집에서 70리입니다. 70리 거리예요. `정말 그래?' 하길래 `아, 이거 내가 이제 스물넷이나 되었으니 장가가야지요' 했지요. 그때 스물네 살 때로구만. 그래 가지고…. 그 달음으로 줄달음을 놓아 가지고 그 색시네 집을 하룻밤을 새워 걸어가야 되는데, 70리를 가야 되는데 밤을 새워 가 가지고 통보를 했다구요.

나는 그다음 고향을 떠났거든요? 그래 가지고 이럭저럭 오자가자 하다 1년 8개월이 지나 가지고 고향에 갔다구요. 그동안에 그 색시는 시집가고도 남았을 거고, 관심도 없는데 말이예요, 가자마자 이모되는 양반이 벌떡벌떡 소리지르면서 큰일났다는 거예요. 혼자 있는 처녀 네가 바람들여 놔 가지고 이 여자가 죽어도 딴 데 시집을 안 간다고 버티고 있으니 큰일났다 이거예요. (웃음)

내가 이런 얘기를 왜 다 하나, 쓸데없이? (웃음) 망신당할 얘기를 다 하누만. 그만큼 가까워서 얘기하는 거예요. 평안도 사람이니 말이예요. 내가 고향이 그리워서. 가까우니까. 천리 만리가 문제가 아니거든요. 이북에서 왔다니까. 아마 그래 가지고 내가 얘기하는 것일 겁니다.

집에 오자마자 `가 보자' 하고 앞에 서서 가시는 거예요. 또 어머니는…. 그다음에는 우리 동네에 내가 그래도 화제거리거든요? 그러니까 전부 다 삼촌으로부터 다섯 사람이 떠났었나? 밤을 새워 가지고…. 그때는 왜정 때, 해방 전이니까 이 길이 신의주 가는 국도인데 국도에 자갈을 이렇게 깔아 놓은 거예요. 자갈돌 다 알거라, 평안북도에서 왔으면, 하! 이거…. 갑자가 오자마자 그 바람으로 떠났는데 구두를 신고 떠났으니, 자갈돌 위에 구두를 신었으니, 아이구…. 이렇게 삐지고 저렇게 삐지고, 그때는 젊었으니 구두를 신었어도 다리를 삐지 않았지. 밤새도록…. (웃으심)

아, 이거 밤새도록 갔으니, 서울에서 차 타고 와 가지고…. 그때는 차가 말이예요, 지금같이 달리지를 않았어요. 부산만 해도…. (녹음불량으로 일부 수록하지 못함)

그래 가지고 이거, 지금 선보러 온 사람이 밤을 밝혀 왔으니까 어떻게 새벽같이 들어갈 수 있어요? 그래서 뒤너머, 바로 뒤너머예요. 주막집에 들어가 가지고…. 새벽같이 아침밥도…. 잘 수가 있어야지요, 고단한데 잘 수가 없다 이거예요. 그래서 색시네 집에 가자! 내가 선도하는 거지요. 별수 있어요? 그때는 남자 배포가 두두룩해야지요. 날고기 먹고도, 술 안 마시고도 술 마신 척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떡 `아주머니, 저 문촌에 있는 누구누구 사위될지 모르는 총각 왔습니다' 하고 전하니 `아이구, 어떻게 어떻게 하고 오시겠다고 합니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절대 나오지 못하게 했어요. `나오면 여기 오기 전에 갑니다' 한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하느냐고 하길래, `내가 찾아뵈겠습니다' 그랬어요. 그러니 별수 있어요?

그래서 내가 선두에 서 가지고 가서 벌써 맏처남하고 인사하고…. `지나가는 손님이 실례가 대단합니다' 하고 떡 인사를 차리고…. (웃으심) 자, 그러니 밥을 해 달라고 할 수 있어요, 무엇을 해 달래겠어요? 세상에 그런 실례가 어디 있어요? 그렇지만 밤새도록 걸었으니 할 수 있어요? `방 하나 내소. 내가 사흘 밤을 못 잤소' 했다구요. 그 한마디 하는 것 보고…. 그렇지만 70리 길을 걸었으니…. 어떡하겠어요? 당신들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사돈 되기가 힘든 거지요. 세상에 그런 무례한 일이 어디 있어요? 그렇지만 뭐 시간 맞추면 됐지. 소문날 것 아니예요? 이왕에 소문나는 김에 유명하게 소문나라! 그래서 `방 내소' 한 겁니다. 안 낼 수 있어요?

마침 자기 쓰던 방을 내 가지고 말이예요. 부자들이니까 시집 올 때 가져 온 이불, 장롱에 든 것, 한 번도 덮지 않은 양단이불이 있었어요. 그것을 펴 가지고…. 이거 요망스러운데 이게 습기가 차서 마르지를 않았어요. 언제 그거 말릴 수 있나요? (웃음) 그거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웃음) 실컷 자다 보니 이게 전부 다 물구덩이가 되더라구요. 그거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부인네들은 그거 이해될 겁니다.

이래 가지고 한 잠 잤더니…. 며칠씩 못 잔 사람인데, 내가 코도 요만큼 골거든요. (웃음) 건장한 사람은 그런 겁니다. 내가 지금까지 20대 들어서 지금까지 50년 동안 누워 본 적이 없으니 건강하지 않아요? 그런 남편 모셔 보지 않은 사람은 남자세계를 모르는 거예요. 코도 안 고는 남자와 무슨 재미로 사노? (웃음) 코고는 사람한테 매도 좀 맞아보고 말이예요. 이래 놓고는 척 쓸어주고, 남자 두둑한 손으로 쓸어주고 말이에요.이게 멋진 거예요. (웃음) 그만둡시다. (웃음) 내가 장편 소설가 같구만. (녹음이 잠시 끊김)

아, 이거 어머니하고 이모하고 삼촌은 딴 데 사랑방에서 자고 말이예요, 아랫방에서는 어머니하고 이모되는 사람이 자고 말이예요, 나는 신랑이니까 독방 줘야지요.

이게 열두 시가 되어도 깨지를 않네! (웃음) 아침밥 다 해 놨지 별수 있어요? 아침밥 안 먹을 줄 알았나? 아, 이게…. 그때가 11월쯤 됐을 거예요.

그러니까 네 시만 되면 해가 질 때거든요. 그러니까 아침밥을 다 해 놓았는데 점심때가 됐으니…. 이거 점심밥을 하게 됐으니 그 어머니하고 이모 노친네가 얼마나….

어머니가 나를 깨워요. 그래 `왜 이러시오?' 했지요. 시간이 몇 시냐고 물어 본 거예요. 그러니 열한 시가 되었대요. 그래서 `열두 시까지 자야 되오' 했어요. 점심 먹어야지, 아침밥 식은 밥 먹겠나요? (웃음) 밥도 새로 하라는 거예요.

일화가 많습니다. 그런 얘기하면 남자로 태어나서 이 문총재만큼 못 산 것이 분하다고 다시 태어나겠다고 해서 죽겠다고 하면 곤란하지요. (웃음)

이래 가지고 말이예요, 한 시 반인가 한 시 40 몇 분에 일어났어요. 이래 가지고 그다음에 세수하는데 남의 집, 불편한 데 왔으니까 돗자리 펴고 말이예요, 대야에 물하고 소금하고 바치는데….

그러다 보니 두 시 반이 됐네! 이렇게 되면 밥 안 먹을 수 있어요? 이 집에서 사돈 될지 말지…. 까놓고 얘기하는 거예요. 가만히 보니까 밥을 늦게 했기 때문에 늦게 일어났다고 하는 겁니다. 늦게 일어나 가지고 두 시 반이 되었는데 아침도 안 먹고 점심도 안 주는 집이 어디 있느냐고 맏처남보고 디리 까는 거예요. 이런 데가 어디 있느냐고, 밥 빨리 가져오라고 말이예요. 조금 가져오면 큰일난다고, 어디 최씨네 인품 한번 드러내라고, 두두룩하게 가져오라고, 나 밥 잘 먹는다고…. 그렇다고 이렇게 해서 안 해올 수 있어요? 예가 있는데. 이렇게 감투를 쓰더라도 가식스럽게는 못 하게 되었거든요.

아닌 게 아니라 밥을 차려 놓았어요. 밥바리에다 이렇게 해 가지고 뚜껑을 이렇게…. (웃음) 그만해야 내가 채우지요. 순식간에 다 훑어버리는 거예요. (웃음) 하나도 남기지 않고, 그러는 겁니다. 어떤가 보는 거지요. 이래 놓고는 물까지 더 달라고 하고 말이예요, 그다음에는 과일 같은 거 안 사 오느냐고, 과일 없느냐고…. 없는 것만 찾거든요.

그러니 소문이…. 신랑이 선보러 왔다더라 하고 소문이 동네에…. 그 동네가 한 150집 되는 큰 동네입니다. 그 최씨 동네…. 150집 되는 그거 뭐 몇 분 동안에 소문난다구요. 아이구, 자는 데는 어떻게 잤다는 둥 어떻고 어떻고 소문이 나는 거예요.

이래서 점심 쯤에 아침을 먹고, 저녁때 되니까 저녁은 못 먹겠다고 하고…. 저녁 못 먹겠단다고 한끼만 대접할 수 있어요? 나는 저녁 못 먹겠다고, 죽어도 못 먹겠다고, 배가 불러 못 먹겠다고…. 그래, 이제 아홉 시쯤 해서 저녁을 하게 되었지요.

저녁 먹고는 말이예요, 이거 색시 선보러 온 사람인데 색시 선보겠다는 얘기는 하나도 안 하네! (웃음) 재미있는 얘기만 엮어대는 거예요. (웃으심) 동경이 어떻고, 일본 사람이 사는 것이 어떻고 어떻고 전부 얘기해요. 두 시까지 얘기했다구요, 두 시까지. 밤 두 시까지입니다. 낮이 아니예요. 밤 두 시까지 얘기하는 걸 보니 틀림없이 또 잘 판세라. (웃음)

이왕에 안방에 들어와 앉았으면 이 집안을 샅샅이 들춰 봐야 되겠다 이거예요. 팔도강산을 누비던 사람, 아시아를 누비려고 꿈꾸었던 사람이니 이 최씨네 집이 아무리 독하고 그렇더라도 한번 뿌리를 뽑고 가자 이거예요. (웃으심)

이거 열두 시가 넘어 두 시가 되도록 소식이 없거든요. 소식이 없다 이거예요. 이렇게 내가 재미있게 얘기를 하니까 장모 될 사람하고 색시될 사람은 언제 들어와 앉았는지 저기…. 평안도에 가면 샛문이 있습니다. 평안도 사람 아니면 몰라요. 남도 사람은 몰라요. (웃음) 우리 평안도 사람들만 모여 있다구요. 남도 사람은 듣지 말라구요. (웃으심)

내가 얘기하는 거지요. 색시가 어떻고, 사진을 보니까 뭐 잘생기지도 못했던데 성품이 이렇고 이렇고, 다 얘기하는 거예요. 이 색시하고 살려면 몇 번 죽었다 깨야 되겠다고, 도망가지 않으면 큰일나겠다고 색시 성격 어떻다는 걸 앉아서 쭉 얘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장모 눈이 둥그래 가지고 뒤집어지더라구요. `아이구, 혼사고 뭐고 다 틀려먹었다. 사진 보고 저렇게 아니, 살게 되면 우리 딸 망살이 뻗치거나 죽지 않으면 야단나겠구만' 하고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그래서 `자, 당신네 딸이 그런 딸인데, 나는 이런 사람이요. 팔도강산을 유람하면서 사는 사람이요. 황진이는 내 사촌 누이동생 하라 해도 부끄럽지 않소' 하고 쓸데없는 얘기를 자꾸 벌여 놓는 겁니다.

이러다가 보니 세 시가 넘었어요. 세 시가 넘었다구요. 자, 이거 가만히 보니까 안 되겠어요. 그래서 `그러면 이제 이렇게 늦더라도 당신네 딸이 얼마만한지 한번 봅시다' 한 겁니다. 밤 세 시에 선보겠다는 신랑감은 내가 역사적일 겁니다. 그래서 이제 불러오라고…. 불러 앉혀 놓고는 전부 나가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나가지 말라고 하고 하나하나 재미있게 밀고 나가는 겁니다. 학교는 어떻고 어떻고 전부 다….

벌써 세 번만 물어 보면 그 여자 심보를 알거든요. 미안합니다. 여자는 세 번만 물어 보면 안다구요. 그래서 신앙에 대해서 물어 봤어요. 신앙에 대해서 물어 보는 거예요. 왜 감옥에? 감옥에 들어갔었거든요, 왜정 때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그때 내가 스물네째 번이예요. 스물네번째 만나서 면접하는 것이예요. (웃으심) `그래, 그렇게 수많은 남자를 퇴짜 놓은 여자인데, 나보다도 훌륭한 남자들이 많을 테니 또 퇴짜를 놓을 것 아니냐?' 하고 들이대는 거예요. 들이대는 겁니다. 어째서 우리 같은 사람을 원하느냐? 그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때 얘기하는 거예요. 영계에서 가르쳐 준 숙연한 얘기를 말이예요. 자세를 갖춰 가지고. 이러이러한 기도할 때에 동과 서에서 큰, 천지가 비치는 거울이 나타나 가지고, 언제 번개 같은 빛을 발하면서 그 거울이 어느새 하늘같이 큰 거울이 되어 가지고 천하에 모든 것이 안 보이는 게 없더라는 거예요. 다 비치더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나타난 그 주인이, 그걸 코치하는 주인이 당신인 걸 압니다' 하는 얘기를 하더라구요. 다 보여 준 거지요. 그러니까 세상에 무얼 원하겠느냐고, 신앙자의 주인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 신앙자의 길이라고…. 그런 간증을 하는데 내가 아주 놀라자빠졌다구요.

또 이제는 밝히게 되어 있어요. 이게 그러지 않으면 눈 잠깐 붙여 가지고 졸음을 면했는데, 아침이 또 되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그럼 내일 만나자고 해 가지고 그 이튿날 본격적인 시험을 치는 거예요, 이틀째, 그다음에 사흘까지 묵는다면…. 선보러 와서 사흘까지 묵고 가면 욕먹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그 이튿날 내가 통일교회의 이런 길을 갈 것을 얘기하면서 전부 조목조목 물어 보는 거예요. 내가 그때…. 하얼빈 위에 하이라얼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때 만주전업이라고 전기회사에 취직해 가지고 일본에서 돌아올 때 학교에서부터 거기까지 가서 살려고 했다구요. 거기에 가려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느냐? 소련 말을 배우고 중국 말을 배우고 몽고 말을 배우려고 그랬다구요. 아시아에 있어서의 대륙기지를 앞으로 요리할 것을 생각하고 말을 배우기 위해서 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3년 동안을.

그런 얘기를 중심삼고 내가 거기에 데려갈 수 없고, 못해도 혼자 5년 동안, 결혼해 가지고 5년 이상 7년까지 될지 모른다고, 혼자 살 각오를 해야 될 거라고 그때 다 얘기를 한 겁니다.

그때야 자기가 그러니까 뭐 주는 것이 값이지요. 달라는 대로 값을 다 지불하게 되어 있잖아요. 뭣이든지 다 한다고 했지요. 이래 가지고 결혼을 한 거예요. 결혼하는 데도, 참 역사도 비참해요. 약혼식을 딱 해 놓고 집에 돌아왔어요. 우리는 일생 동안 내가 전부 다 개척했습니다. 결혼한 날짜도 내가 다 받고….

만주 안동현에 만주전업이 있었습니다. 그후에 그 지점에 가려고 가만 보니까 정세가 편안치가 않아요. 길을 떠나려니까 하늘이 허락지를 않아요. 정세가 좋지를 않아요. 만주에 가서는 안 되겠더라구요. 그래서 안동에 취직한 모든 걸 반환하러 갔어요. 가지도 않고 사표까지 첨부해 가지고 비용까지 다 가지고 안동에 가서 지점장 만나 가지고 청산짓고 나오다가….

곽산 저기는 정주 다음이예요. 정주와 선천 중간입니다. 그때가 2월달이던가 될 거예요. 이제는 결혼식 날짜를 받기 위해서 들렀다구요. 그런데 차 시간이 맞지 않기 때문에 저녁에 와 내렸어요. 곽산에 내리니까 여섯 시인가 그래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라구요, 벌써. 거기까지가 15리 길이거든요. 그러니까 그때가 2월 초예요. 눈이 그때…. 평안도에는 3월달까지 눈이 옵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구요. 그러니까 내려서 찾아서 이게…. 처음 가는 거지요. 약혼해 둔 색시한테 총각이 말이예요. 색시는 날짜를 받아 가지고…. (웃으심) 그건 딴 사람 시키는 거지요.

밤 늦게 떡 가니까…. 처남이라는 사람이 신앙적으로 자기 어머니하고 이모님하고 맞지 않았어요. 이 재건교회는 특별한 교회입니다. 어머니하고 동생이 너무 지독하게 믿고 그러니까…. 오빠는 신사참배를 하고 말이예요. 신사참배한다고 한 집에서 티격태격하고 신앙자가 아니라고 푸대접받고 그랬거든요. 그랬는데 나하고 약혼해 놓고, 그 기간에는 최씨네 문중에 소문이 났어요. 신랑 잘 얻었다고 말이예요. 이러니까 어머니와 딸이 얼마나 똘똘 뭉쳐서 좋아하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신앙이 틀린데 동생은 가만 보니까 신랑 잘 얻었다고 소문나고 그래서 결국은 자기 오빠가…. 작은 오빠도 있는데 말이예요. 형님 넷하고 다섯, 7남매구만요. 자꾸 소문이 나니까 시기가 났다구요. 시기보다도 좋지 않게 생각했어요. 이거 안 되겠다 이거예요. 신앙도 그렇고….

그래 가지고 밤에 떡 가니까 말이예요. 난 처음 가는 거지요. 방에 들어가서 인사를 하고 앉으니까, 장모님도 없고 집사람도 없어요. 어디 갔다는 거예요. 어디 잔치가 있어서 갔다나? 그래, 앉아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가 처남되는 사람이…. 또 그 사람이 배 수술을 해 가지고 밸을 한 자를 끊어 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생리적으로 변태증 성격이 생겼다나요? 그렇다는 거예요.

나보고 직접 하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아무리 신식남자라 하더라도 최씨네 문중 가법이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결혼하기 전에는 신랑 되는 사람이 색시네 집에 못 오게 되어 있는데 왜 왔느냐 이거예요. 거 맞는 말이지요, 사실. 그렇지 않아요? 뭐 돌아다니는 녀석을 믿을 수 있어요? 안 그래요? 절차를 따라 가지고 다 그래도 못 믿는데, 약혼해 놓고 식도 안 하고 찾아오니 그건 뭐 반대할 만하지요. `아, 그런데도 왜 줘?' 그런 평이 날 수 있다구요.

그래서 그 앞에 작은 처남댁이 있거든요. 작은 처남댁은 활달합니다. 그래 가지고 내가 이래 됐다고 전부 들러서 인사하고 돌아가는데….

그래, 그 소식을 우리 성진이 어머니가 들었어요. 자기 칠촌 집에 갔다가 자기 오빠가 가라고 했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이게 벼락이 떨어지는 것 아니예요? 내가 자기 작은 오빠 집에 들렀다가 인사하고 나 돌아가야 된다고 길 떠난 뒤에…. 내가 한 30분 쭉 혼자 나오는 거예요. 눈이 내리는데…. 내가 시를 쓰든가 소설을 썼으면 멋진 장면을 그려낼 텐데…. 혼자 심각해 가지고 70리 길을 걸어가려고 작정하고 아마 한 4리쯤 나왔을 겁니다. 나오니 깜깜하지요.

그런데 성진이 어머니가…. 성진이 어머니가 보통 여자가 아닙니다. 옷을 차려 입고 따라 나온 거예요. 약혼했으니까 자기 신랑이 틀림없는 거거든요. 세상이야 뭐라고 하든간에, 누가 뭐 야간도망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예요. 집안의 오빠가 그렇게 만들어 놓았으니 틀림없이 파혼된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 대가집 문중에 내가 돌아와 가지고 얘기해 봐요. 용서없이 그건 뭐 즉각 파탄되는 건 틀림없거든요. 그걸 아는 거예요. 돌아가래도 안 돌아가고 70리 길을, 곽산에서 정주까지 나왔어요. 우리 집까지는 안 왔지. 그러니까 50리 길을 따라나왔지요.

그러면서 얘기하던 차에 가정에 대해 쭉 그 역사를 얘기하는 거예요. 이러이러한 것을 용서하시라고…. 그래 가지고 정주에 우리 삼촌네 집이 있는데 삼촌네 집에, 그 길을 걸어와서 밝을 때쯤 해서 와서, 그다음에 조금 눈붙이고 그 사람은 돌려보내라고 하고 나는 집에 이 15리 길을 나오려고 하는 데, 안 돌아가겠다는 거예요. 그러고 보면 성진이 어머니가 참 난 여자입니다. 내가 여기까지, 삼촌네 집까지 와서 드러나게 자지는 않았지만 삼촌하고 숙모한테 인사까지 하고 밤을 새웠는데 부모님한테 인사를 하는 게 도리가 아니냐고 하는 거예요. 그래 가만히 들어 보니….

부득부득 집에 오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와 가지고는 나흘인가 있다가 돌아갔어요. 전부 나가서도 부엌 일도 실제로 하고…. 삼촌네 집에 있으면서, 이러고 돌아갔다구요. 그러니까 이제 뭐냐 하면 세상이 아무리 반대해도 파혼될 수 없다 이거예요. (웃으심) 이렇게 안심하고 돌아간 것입니다. 그런 걸 보면 성진이 어머니가 보통 여자가 아닙니다.

통일교회에서 반대하는 데도 지독하게 반대했지요. 따라다니면서, 치안국, 내무부에까지 가서 우리 남편 죽여 버려야 된다고, 그러고 다녔다구요. 악착같이 반대했지요. 그건 그만큼 사랑했기 때문이예요.

자, 요만큼 하고, 후편은 나중에 하지. (웃음.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