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집: 어찌하십니까 1972년 08월 13일, 한국 청평수련소 Page #127 Search Speeches

효자와 충신은 부모와 군왕의 -려를 자진해서 맞" 사람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는, 당신의 뜻을 대해서 어찌하십니까 해야 합니다. 문제가 크다구요. 남한이 갈 수 있는 길, 북한이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여기서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여기서 뒤죽박죽하다간 다 망한다는 거예요. 종자도 안 남고 다 망해 버린다구요. 여러분이 그 풍조에 왔다갔다하다가는 뼈다귀도 못 건진다구요. 지금 때가 그런 때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내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당신의 뜻을 이루려니 죽음밖에 없습니다. 백성을 대표하려니 죽음밖에 없습니다' 하며 그 결의를 넘고 나는 데서만이 새로운 소망이 출발할 수 있는 거예요. 십자가를 앞에 놓았던 예수 앞에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안 그래요? 희망이 있었을 것 같아요? 내 뜻을 들고 나왔다간 썩은 호박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가 양자를 둘 다 걸고 이루어 드리려니, '하나님의 그 슬픔 대신 나를 역사적인 슬픈 자로 죽여 주소'라고 했기 때문에, 2천년 동안 성신과 더불어 비참한 놀음을 하고 나오는 거라고요. 안 그래요? 대신 나를 쳐 주소….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희생되었지만…. 그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희생했어요? 죽을 때 '오, 주여!' 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죽음길을 간 그들이 전부 다 이렇게 죽어야 천당가겠다고 했던 패지, 예수님이나 하나님의 사정을 알아줬어요? 천당가겠다고 했던 패는 많았지만 하늘나라를 이루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죽겠다고 한 사람들은 없더라 이거예요. 자기 실속을 위한 무리는 많았지만, 뜻을 성사시켜 드리고 하나님과 인류의 해방을 위해서 노력한 사람은 없었다는 거예요. 아무도 없더라 이거예요.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이제 통일교회에 있어서 '어찌하십니까?' 이게 문제가 된다고요. 하나님이 '어찌하십니까' 하는 문제하고 선생님이 '어찌하십니까?' 하는 문제하고 여러분이 '어찌하십니까' 하는 문제는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패는 망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건 불가피한 결론이 아니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2천년 동안 나라 없는 백성으로서 수많은 민족의 말발굽에 밟혀 쓰러졌고 총칼에 쓰러진 것이 아니냐. 그러면 지금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그 자리를 어찌할 것이냐? 마찬가지입니다. 피하려고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책임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뭐 선생님이 우리의 책임을 지시면 되지' 하는 입장에 선다면, 여러분은 잠자던 베드로와 같은 무리밖에 되지 않을 것이 아니냐. 그렇게 되면 선생님은 '차라리 몰랐으면 좋을 뻔했다'고 책망하던 예수의 심사와 똑같은 입장이 될 것 아니냐. 뭐가 다르냐 이거예요.

윤리적, 도리적 혹은 인륜적으로 따져 보게 된다면 자식이 부모를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시고 가려고 하는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어떻게 자식의 도리를 하느냐' 이것이 문제라고요. 효자는 부모의 염려를 자진해서 맡는 사람입니다. 충신은 그 나라의 군왕의 염려를 자진해서 맡는 사람입니다. 누구의 통고도 받지 않고 자진해 맡게 될 때에 그는 군왕의 혈족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안 그래요? 명령을 받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