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집: 복귀의 한계점 1970년 12월 2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12 Search Speeches

희생의 대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인간

인류의 시조로부터 오늘날까지 수많은 역대의 선조들이 걸어오는 동안 우리 조상들은 맨 처음에 하나님이 인간을 대할 때의 슬픔보다도 몇 천 배 몇만 배의 슬픔을 하나님께 가중시키며 나왔습니다. 그러한 조상의 핏줄을 이어받고 태어난 현재의 나 자신임을 생각하게 될 때, 나 자신 역시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아무런 내용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기에 부족한 입장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각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될 우리의 입장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러한 우리를 이끄시어 당신의 아들 딸로, 더 나아가 둘도 없는 하늘나라의 왕자 왕녀로 회복시켜야 할 하나님의 고충이 얼마나 크시겠는가를 우리들은 생각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모든 것을 자기를 중심삼고 관계지어 생각하기 쉽습니다.자기가 기쁠 때에는 세상이 다 기쁜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기쁠 때에는 이 세상이 기쁨의 대상으로 나타나는 것이요, 반면에 하나님이 슬플 때에는 이 세상이 슬픔의 대상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그러하듯이 하나님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대해 나오시는 역사과정에서 기쁨의 한때를 가져 보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그런 한때를 갖지 못하셨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슬픔의 자리에서 그 슬픔을 극복하면서 기쁨의 한 날을 소원하시며 지금까지 싸워 나오십니다. 이것이 우리 선조들을 중심삼고 계속해 나온 하나님의 섭리노정입니다.

개인적인 섭리노정을 거쳐 가지고 가정적인 섭리노정으로 확대시키고, 종족적인 섭리노정, 민족적인 섭리노정, 국가적인 섭리노정을 거쳐 가지고 세계적인 섭리에서 승리할 수 있는 터전을 닦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계적인 승리의 터전을 통해서 이 천주를 창조본연의 모습으로 원상 복귀할 수 있는 터전을 구상함과 동시에 전피조세계를 복귀하여 거기에 하나님이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을 찾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노정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엄청난 수난의 노정이요,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는 고통의 노정이라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정을 갖고 나오신 하나님인데도 우리 선조들 가운데는 그러한 하나님을 더 슬프게 한 선조도 있을 것이고 덜 슬프게 한 선조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 선조의 역사를 살펴 볼 때, 지금까지의 우리 역사의 배후에서 하나님 앞에 슬픔을 가중시키고 슬픔의 조건을 남겨 놓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또한 오늘날 한 생명체로서, 한 인생으로서 미래를 바라보고 출발하려는 여러분 자신은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입장에 있느냐 할 때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수고하신 공적의 터전과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희생의 대가를 치러 쌓아 가지고 남겨 상속해 준 선의 실적으로 말미암은 승리적인 터전 위에 선 입장이기에, 하나님을 대해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영광된 자리에 설 수 있게 된 사실에 대해 여러분은 진실로 하나님 앞에 감사드려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