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3집: 남북통일의 기수가 되자 1987년 05월 01일, 한국 한남동 공관 Page #233 Search Speeches

평안북도 지방의 결혼'속

우리 어머니가 훌륭한 것은, 8남매를 다 결혼시키다 보니 말이예요…. 이북에서는 결혼하는 방법이 남한과 달라요. 남한에서는 장가가면 신랑이 하룻밤을 자고 아침에 큰상 받고는 색시 데려오지요? 그러나 이북 결혼식은 그렇지 않아요. 대가집에서 결혼하게 되면 신랑이 색시 집에 가서 잔치를 사흘을 합니다. 사흘 동안 병풍 뒤에 신랑 자리를 잘 꾸며 놓고 신랑을 모시고 사흘이 지나야 비로소 그 자리를 거두는 거예요. 돗자리 위에 병풍을 치고 큰상으로 대접하는 것입니다. 첫날은 큰상을 받는 거예요. 아침도 큰상을 받고 점심도 큰상, 저녁도 큰상이예요.

점심때의 큰상은 뭐냐? 동네 젊은 사람들이 와서 단자라는 것을 쓰게 합니다. 신랑을 테스트를 하는 거예요. 저 녀석이 얼마나 실력 있나 해가지고 문구를 써서 답을 하게 하는 겁니다. 답을 못 하면 벌로 들어내기도 하고 틀기도 합니다. 이래 놓고는 장인 장모를 틀어 가지고는 돈을 내게 해서 한탕 먹는 것입니다. 그런 풍습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국이 참 멋진 나라다 이겁니다. 그게 좋은 풍습이라구요.

사대부 집에 종들이나 동네 사람이 어디 자기들 멋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어요? 그러나 대갓집의 규수가 자라는 것은 전부 보거든요. 어디가 잘났느니 못났느니 하면서 동네 도둑놈 같은 젊은 녀석들이 짝사랑을 하고 별의별 짓을 다 한다구요. 그런 사람들이 담 안에 들어와서 시집가는 걸 어떻게 엿보기나 하겠어요? 회심풀이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주단자가 오고 신랑이 오면 문을 열어제끼고 환영합니다. 그러면 별의별 젊은 놈들이 떼거리로 몰려와서 신랑을 들어 메기도 하고 두들겨 패 가지고 얼마를 내라고 하기도 하고 말이예요.

신랑이 오는 날, 큰상부터 들어 옮겨 가는 거라구. 그것부터 들고 가는 거예요. 거기에는 없는 것이 없어요. 소갈비로부터 뭐…. 부자면 부자일수록 상은 높은 것입니다. 몇 자 상, 이래 가지고…. 후들면서 회심풀이를 하는 것입니다. 몽둥이로 들이패면서 '이놈의 자식이 안 왔으면 짝사랑이라도 하고 담 너머로 얼굴이라도 보고 생각이나 할 텐데, 이놈, 네가 와서 관심 갖고 있던 여자를 도둑질해 가는구나' 이러면서 분풀이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그걸 보면 한국 풍습이 참 멋지다구요. 신랑이 와서 하루를 지내고 나면 그 다음날부터 그런 놀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동네방네 사람은 전부 모이지요. 그래 가지고 뭐 사위가 잘났느니 어드렇다느니, 사위가 자랑스러우면 한턱 내라는 거예요. 장모보고 내라 하고 장인한테 내라하고 색시에게까지도 내라고 하네! 또 색시는 남자들이 다룰 수 없으니까 아줌마들이 달라붙어서 짓이겨 댄다구. 이렇게 동네 잔치를 제2차로 하고, 또 작은 잔치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그런 야단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흘 잔치를 한다구요. 알겠어요? (웃음)

장가를 간 그날로 바로 색시를 안 데려갑니다. 보통 일주일 있는데 어떤 사람은 40일까지 있어요. 「처가집 기둥 뿌리 뽑겠네요」 뭐, 처가집 기둥뿌리를 뽑는다구? 장가갈 때 그렇게 실컷 먹고 대접받지, 언제 대접받겠어? (웃음) 보통 일주일, 아주 가난한 사람이라 해도 3일, 3일도 아니예요, 4일입니다. 그렇게 4일만에 돌아오고 5일만에 돌아오는 거예요. 그런 풍습이 있어요.

그러면서 이제 뭘하느냐? 색시가 시집을 갔으니까 시가에 들어가야 될게 아니예요? 서울과는 달라요. 촌색시들이 들어가게 될 시집 문중을 알게 뭐예요? 아무것도 모른다구요. 서울 같으면 결혼하게 되면 방 하나 얻어 가지고 세간 나기 때문에 간단합니다. 그러나 대갓집 층층시하에 들어가는데 색시가 신랑집 가풍을 몰라서야 되겠느냐 이거예요. 가풍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신랑이 가르쳐 주는 거예요. 우리 집엔 할아버지 누구로부터 삼촌 누구하면서 7촌까지 관계된 모든 친척을 설명하는 거예요.

왜 설명하느냐 하면 시집올 때 인친간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버선 한 컬레라도 해오라 그 말이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신랑이 색시네 집에 가서 그렇게 머무는 것은 다 뜻이 있는 것입니다. 시집올 때 신랑 가문의 이름이 손상되지 않게끔 시나리를 해 가지고 와라 그 말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옷 싸이즈는 어떻고 하면서 전부 다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신랑이 한번 보고 안 되겠으니, 장가가서 해올 것 애초에 뭐 생각 안 했으니 처음엔 장가가는 것만 좋다고 생각했지, 그런 걸 생각이나 했겠어요? 신랑이 신부집에 한 번 가서는 되지 않으니 갔다 와서는 또 갔다 오고 세 번 네 번, 길게 되면 일년 반도 걸립니다. 이렇게 장가를 가서 색시를 데려오는 데 3년 걸린 집도 있다구요. 그 동안에 전부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색시가 시집에 오게 되면 사흘만에 자리를 걷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리를 걷고는 그집 문중 사람이 됐으니까 큰 삼촌집으로부터 작은 삼촌집 뭐…. 대갓집은 그렇잖아요? 떨레 (떨거지)가 많으면 그래야 돼요. 순서대로 큰아버지 집으로부터 작은 아버지 집까지 쭉 다닌다구요. 종조부가 있으면 종조부 집부터 쭉 돌아다니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반상계한다고 해 가지고 소(小) 잔치를 하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보통 잔치하는 것보다 잘 하는 거예요. 인친간에 전부 모여서 한바탕 작은 잔치를 하면서 인사도 하고 서로 친하게 되는 거예요. 이런 놀음을 하면서 쓱 한 바퀴돌게 되면 그 가문의 모든 인친을 다 알게 됩니다.

「건대에서 강의가 끝났습니다」 잘 끝났나? 「예」 잘했구만. 잘했다구. 그래, 이쪽은 좀 비켜요, 비켜. 다 일어서라우! 이쪽으로 오라구요. 왼쪽은 다 비워요. 먼저 들어올 패는 이쪽으로 오고 새로 들어온 패는 이쪽으로 다 오라구요. 자, 앉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