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집: 우리의 목적 1972년 10월 0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60 Search Speeches

도의 길은 비참하다

그런데 보고 싶은 곳을 가는데 나를 주장해 가지고 가겠다고 하면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를 위해 가느냐? 보고 싶은 곳을 위하여 가는 거라구요. 그 놀음이예요. 그래서 내가 있는 것은 그를 중심삼고 남을 위해서….

여러분, 보고 싶은 곳이 있어요? '그럼 있지, 미국에 간 우리 아들, 우리 딸, 아무 대학교 나온 귀염둥이 우리 아들, 자랑할 수 있는 우리 아들 딸이 있는데 내가 왜 안 보고 싶겠소?' 이것은 이미 썩어진 거라구요. 그것은 썩어진 나무인 것입니다. 그 몸뚱이가 썩고 있으니 봄철이 되어도 돋아나는 순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게 다 썩어져서 영원히 없어지면 그 순도 죽습니다. 뿌리를 박지 못한 그런 나무예요.

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없어요? 대답을 해보라구요. 있어요. 없어요? 사람이 성공하는 비결은 뭐냐? 어떤 목적을 대해 가지고 어디든지 가고 싶다하는 일체의 감정을 통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성공을 빨리 해요. 더디 해요? 성공을 빨리 하지요? 빨리 만나는 거라구요. 만약 못 만난다면 꿈에서라도 만나는 거예요. 그 이상세계를 만약에 그렇게 보고 싶어하고 그리워하게 된다면 고생은 해야 되겠지만 꿈 가운데서 만날 때마다 더 심각하게 대하면 눈을 뜨고도 다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좋겠지요?

그래서 종교 세계에서는 통한다는 말이 성립되는 거예요. 얼마나 보고 싶으면 그것이 실상으로 나타나게 돼 있느냐?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그 나타난 것이 그냥 그대로 들어맞게끔 되어 들어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얼마나 보고 싶어해야 되느냐? 자기 아들을 잡아서 제사할수 있어야 되고, 자기 여편네를 잡아서 제사할 수 있어야 되고, 자기 부모도 그럴 수 있어야 됩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씩보다는 부모와 아내와 아들딸을 한꺼번에 잡아서 제사할 수 있는 성의를 가지고 하지 않고는 그곳까지는 갈 수 없는 거예요. 왜 그러냐? 부모는 조상이요. 부부는 상대요. 자식들은 후계자입니다. 그러니 조상과 상대와 후계자를 전부 다 일시에 잡아서 둘로 갈라 놓지 않고는, 가른 자를 하나는 오른발로 밟고 다른 하나는 왼발로 밟고 넘어서기 전에는 이상세계가 못 옵니다.

왜 그러냐? 타락으로 우리 조상이 어떻게 됐느냐? 하나님을 배반했지요? 또 아담과 해와, 남자 여자가 서로 원수가 되었지요? 그렇지요? 원수의 자식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부모와 자식이 서로 원수가 됐다구요. 이 원수 된 것을 잡아 가지고 제사드리기 전에는 못 넘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면서부터 그런 길을 부정해야 되니 '가정을 떠나라, 결혼생활을 그만둬라, 자식을 갖지 말라'는 결론을 안 내릴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도의 길입니다. 도의 길, 비참한 길이라는 거예요. 아브라함이 백 세에 독자로 얻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 세상적으로 보면 그런 미친 하나님이 어디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이런 심정의 내용을 두고 볼 때 정당한 일이 아니냐, 부모를 모시고, 여편네를 데리고, 자식을 데리고 그냥 그대로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안 돼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