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집: 천국은 나로부터(1) 1971년 07월 1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8 Search Speeches

천륜과 천정- 의한 세계

하늘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천륜(天倫)이 있고, 천정(天情)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인륜(人倫)과 인정(人情)을 가지고 역사를 엮어 왔다면, 그것은 천륜과 천정이 출발할 수 있는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천륜을 대표할 수 있는 마음 바탕, 천정을 이어받을 수 있는 마음 바탕. 인륜에 결정적인 결실이 될 수 있는 마음을 중심삼은 인격, 인정에 결실될 수 있는 마음을 중심삼은 인격-이것은 최고봉의 인격, 그 자리에 선이 심어지지 않을 수 없는 인격이요, 선이 같이하기를 바라는 인격-을 갖춘 자리에서부터 천국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천국은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것이라구요. 인간 세계에 인륜이 있고 인정이 있듯이 거기에는 천륜이 있고 천정이 있기 때문에, 천륜에 따라 천정에 의한 상대를 요구할 것이요, 천정에 의한 가정을 요구할 것이요, 천정에 의한 민족, 국가, 세계를 요구할 것이 아니냐! 천륜을 따라 규정되어진 사회체제를 고대할 것이 아니냐! 그 세계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 세계는 오늘날 이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출발기점을 새로이 모색해 가지고 인류 종말 세계를 전체 앞에 알려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종말을 제시하지 않는 종교는 가짜 종교입니다. 그런 종교는 완전한 종교가 못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종교든지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종말을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또 교조가 그 당시에 세계를 대표해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교조가 선한 세계를 인계받아야 할 사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명을 이 세상 끝에 와 가지고 이어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와야 한다는 재림사상이 남아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현 역사시대에 있어서 인류 사회에 결탁할 수 있는 하나의 출발 기점이 되고 하나의 종착점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 이 재림사상이 이론적으로 천국으로 출발하는 기점이 되는 것이요, 이념적으로 천국의 기원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적이어야 됩니다. 세계적인 중심이라는 것은 ([그림 3]을 가리키며) 여기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천국은 내 마음에서부터라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을 보게 될 때 마음도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있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작용하기 때문에 압니다. 작용하지 않으면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아느냐? 작용을 하기 때문에 안다는 거예요. 작용을 통해서 압니다. 전기가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아느냐? 전기가 작용하여 나타난 빛을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전기가 통하면 반드시 작용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 작용은 어떻게 되느냐? 작용이라는 것은 독자적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독자적으로 작용하는 물건은 없습니다. 세상만사 독자적으로 운행하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작용 세계에 있어서 독자적인 작용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안 그래요? 작용을 하면 반드시 주고받는 거예요. 환경의 여건이 벌써 여기에 포괄되어 들어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내가 좋다' 할 때도 혼자 좋아해요? 좋아하는 작용의 대상이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입니다.

작용에는 반드시 상대적 요건이 필요합니다. 모든 물질세계 혹은 자연 현상 세계의 모든 것은 상대적 권내의 작용 현상을 통하여 우리가 느끼는 것이지, 작용을 통하지 않으면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용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독자적인 작용은 없습니다. 작용에는 상대 요건이 절대 필요합니다.

이렇게 볼 때 '양심은 혼자 작용한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없어 가지고는 작용은 절대 안 벌어집니다. 열만한 주체가 있다면 그것이 작용하는 데 있어서 아홉만큼이면 된다 하는 입장에 서면 절대 작용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이 시내에 간다 할 때 손해나게 되면 절대 안 간다는 것입니다. 플러스가 되어야 간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양심의 가책을 중심삼아 가지고 매일같이 재촉하는데 그 마음이 작용해 가지고 나에게 마이너스되기 위해서 그러느냐, 플러스되기 위해서 그러느냐? 이 원칙을 놓고 따져 볼 때, 마이너스되기 위해서 그런다면 양심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밤낮없이 나한테 천대받으면서도 그러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그것은 플러스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움직이면 플러스가 틀림없이 나타나기 때문에 마음은 몸에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의 명령에 따라 몸이 움직이게 될 때는 어떻게 되느냐? 플러스가 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익이 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하고 보니 좋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왜 좋으냐? 이익이 났기 때문에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에서 둘이 되었다 이거예요.

마음대로 못 하면 어떻게 되느냐? 둘 되려고 작용을 했더랬는데 마이너스가 되었다, 명령을 받았는데 행하지 않았다 할 때에는 어떻게 되느냐? 가책을 받습니다. 떨어져 내려가는 것입니다.

힘의 작용에서는 그렇다는 거예요. 힘의 작용을 보면 입력과 출력이 같지 않습니다. 나오는 힘은 반드시 작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작용하고 난 다음에는 왜 기쁘냐?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아 가지고 작용한 후에는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에서만 가능하냐? 사랑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사랑에서만. 딴 데서는 가능하지 않은 거예요. 힘의 작용에 있어서는 입력보다 출력이 작은 것이 원칙인데 사랑의 세계에서는 반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세계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