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집: 한을 남긴 책임분담 1972년 10월 2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20 Search Speeches

책임분담이 전체를 좌우할 수 있" '심적 "인

이 책임분담이라는 것은 어느 시대나 어떠한 개인이나 혹은 어떠한 민족이면 민족, 어떠한 세계에도 남아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한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이 책임분담이라는 과제가 자기 생애를 중심삼고 언제나 앞에서 이미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책임분담을 완수하면 개인으로서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요.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면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개인으로서의 인생길을 완전히 갈래야 갈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책임분담은 물론 생애 노정에 전개되어 있지만, 우리 하루하루의 생활 가운데서도, 여러분이 보고 듣고 혹은 느끼는 일체의 생활 가운데서도 책임분담을 해야 할 인연이나 환경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듣는 것도 책임분담을 완수하고 나서 들어야 되는 것이요. 보는 것도 책임분담을 완수하고 나서 보아야 되는 것이요. 느끼는 것도 책임분담을 완수하고 나서 느껴야 되는 겁니다.

만일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한 자리에서 보고 듣고 느낀다면 그 모든것은 책임분담 완수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한 자리에서 내가 듣고 기뻐한 그 기쁨이 책임분담을 완성한 이후의 기쁨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한 그 자리에서 느끼는 그 느낌이 책임분담을 다한 자리에서의 느낌으로 통할 수 없는 겁니다. 즉 나라는 사람이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한 자리에서 살고 있는 것이 책임분담을 완수하고 난 후의 삶과 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에, 우리는 자나깨나 가나오나, 혹은 우리의 일체의 생활을 통해서 이 책임분담이라는 명제가 전체를 좌우할 수 있는 중심적인 요인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내가 진정한 의미에서 기쁠 수 있는 한 날을 맞이했다면, 그것이 책임 분담을 완성한 자리에 있어서의 기쁨이냐?혹은 내가 보고 좋아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봤다면, 그것이 책임분담을 완수한 자리에서 보고 좋아하는 것이냐?내가 뜻있는 걸음을 걷는다면 그것이 책임분담을 완수한 자리, 하늘과 땅, 온 우주가 바라볼 수 있고, 혹은 희망의 조건으로 남아질 수 있는 그 자리에서 가고 있느냐, 혹은 그런 자리에서 살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전진하는 과정에서도 책임분담이 남아 있는 것이요. 혹은 쉬는 그 자리에서도 책임분담을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춘시대에도 책임분담의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을 청춘시대에서 해결 못 하면 장년시대, 노년시대의 생애를 통해서 책임분담 추구의 요건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만일 살아생전에 이 책임분담 완성을 하지 못하게 될 때는, 이것은 영원한 참소의 조건으로 남아집니다. 저세계에 가서도 이 책임분담의 요인은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의 책임분담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것은 한많은 요인을 갖고 있는 책임분담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도 이것을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했고, 아벨을 중심삼은 복귀의 역사도 책임분담을 하는 입장은 달랐지만,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벨이 희생을 당한 것입니다.

노아 가정에서도 역시 이 책임분담 때문에 그렇게 됐고, 아브라함도 역시 생애노정의 수난길에서 최후로 다짐지어야 할 입장인데도,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역사는 불신의 역사로 남아진 것입니다. 모세도 역시 처한 환경은 달랐지만, 모세가 해야 할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비참한 운명에 놓여진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교의 4천년 역사를 종결짓고 이스라엘의 소망의 한 때를 맞이하는 전체의 책임을 대신하여 다짐지어야 할 사명을 짊어진 세례 요한이 민족을 대표한 책임분담, 교단을 대표한 책임분담을 완수할 수 있는 한 날을 맞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은 비참한 민족이 되었고, 유대교회는 하늘의 복귀역사에 한의 요인을 남긴 교단이 됐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 사명이 예수 앞에 옮겨지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예수가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책임 못한것을 짊어지고, 그 시대의 사명을 앞에 놓고 몸부림친 것도 이 책임분담을 완수하기 위한 목적에서 그랬던 것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혹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중심한 열두 제자도 스승을 맞아 스승 앞에 하여야 할 제자로서의 맡겨진 책임분담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비운을 자아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