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집: 남은 때 1970년 05월 2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59 Search Speeches

천주주의를 주장하" 통일교회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어떠해야 되느냐? 통일교회를 위한 통일교인은 필요없습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나라를 위하는 입장에 서야만 나라가 발전할 때까지 남아질 것이요, 세계를 위해 정성들이게 될 때에는 세계가 남아질 때까지 남아질 것입니다. 세계 이상의 곳을 향하여 정성을 들이면 세계를 소화시키고 그 이상의 자리에 남아질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는 세계주의가 아닌 천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막연한 얘기가 아닙니다. 이런 내용을 오늘 우리들의 생활 가운데에서 탕감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저울질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실을 느끼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냐? 이것을 실감나게 느끼면 느낄수록 그 사람은 위대한 인물일 것입니다. 어찌하여 그가 위대한 인물이냐? 세계 앞에, 천주 앞에 다가올 시련과 부딪쳐 투쟁하겠다고 맹세한 입장에 섰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의 소망하는 때가 천년, 혹은 2천년 후가 될는지도 모르고 그가 오늘날 순교하여 희생의 제물이 될 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그는 시간성을 초월해서 세계를 지배하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역사시대의 승리의 기점을 닦아 놓고 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면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개인의 탕감만을 위해서 수난의 길을 가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차피 개인의 탕감노정은 가야 됩니다. 청산지어야 해요. 그러나 개인 가운데에는 그 선조들로부터 내려온 죄로 말미암아 탕감의 양이 많아서 일대를 통해서는 청산지을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자기 개인을 위해 정성을 들인다면 그 정성은 미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자기 개인을 넘어 가지고 희생을 각오하고 `나는 제물입니다 내 생애 자체가 제물입니다. 내 생애 자체가 역사를 대신한 맹세의 조건입니다' 하고 나서게 되면 비록 그 자체는 부족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그는 역사의 한계를 넘어 미래의 세계를 중심삼고 하나님과 맹세의 조건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는 곳에는 맹세하지 못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걸고 나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생명을 걸고 나서서 세계를 중심삼고 피의 호소를 하게 되면 그건 세계를 향하여 호소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걸고 `내 생애를 인류를 위해, 세계를 위해, 우주를 위해 제물로 바칩니다.'라고 하나님 앞에 맹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 생명을 온전히 목적을 위하여 투입하겠다고 맹세하면서 제물로 등장하는 사람은 아무리 비참하고 악한 조상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 탕감의 요인을 일대에 청산하는 것은 물론이요, 선조를 포함한 일족의 탕감의 요인까지도 자동적으로 청산하고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그들의 피의 대가로, 그들의 순교로 인하여 맑아져 왔고 오늘의 시대권내까지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 통일교인들이 가는 길 앞에 탕감의 길이 없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개인의 탕감노정이 있습니다. 그 개인의 탕감노정을 거치고 나서야 공적인 탕감노정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이라는 거룩한 곳을 중심삼고 보는 정당한 관이 아니겠는가?

우리 인간은 거룩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타락의 후예로 거룩한 자리에 서기는 지극히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섭리의 뜻을 추진해 나오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딸들을 죽음길로 내모는 것은 잔인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복을 줄 수 있는 하나의 비법이기 때문에 그런 길로 내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정을 우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우리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입장에서 가는데도 불구하고 시련이 부딪쳐 오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시련을 피해 가지 말자는 것입니다. 자기가 맹세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기 단체면 단체의 책임자가 맹세했을 때는 그 단체의 책임자가 제시한 시련의 조건에 걸려 들어서 탕감에 말려드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말이냐? 그 단체의 장이 망하게 되면 자기도 망할 수 있는 운에 부딪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탕감조건을 세운 사람은 책임자인데 왜 생각지도 않은 내가 탕감의 영향을 받느냐? 그것은 한 나라의 주권자가 그 나라의 운명에 탕감조건을 세워 탕감하고 간다고 할진대는 그 나라의 백성도 주권자와 더불어 그 탕감에 해당하는 고난길을 가야 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한국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중심삼고 발전도상에 있는데, 정부가 계획한 대로 국민은 거기에 가담해서 따라가는 것입니다. 정부가 어려움을 당하면 국민도 반드시 어려움을 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는 따로따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국민은 생활권내에서 정부의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탕감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아시아를 바라보고 세계를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이 아시아를 중심삼고 탕감시대로 넘어가게 된다면 아시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아시아권 탕감시대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더우기나 그 나라의 주권자들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또, 세계가 탕감시대로 들어가게 된다면 인류 전체는 세계의 탕감시대권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탕감되어 넘어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