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집: 본부의 사명과 그 책임 1971년 11월 2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32 Search Speeches

본부의 강단- 나서" 선생님의 마음 자세

내가 공석에 나타나서 기도하는 것을 무서워하는 사람입니다. 기성교회 목사 장로들처럼 그저 뭐 습관적으로 하는 놀음으로... 나는 그러지 않는다는 거예요. 보라구요. 초상집 주인과 같은 아버지를 모시고 뭇 생명을 생사의 기로에서 생명권으로 옮겨야 하는 입장에 있는 거예요. 그건 심각한 문제예요. 그건 놀이가 아니라구요. 장난거리가 아니라구요.그것은 결판이요, 담판이요, 생사의 결정을 가름하는 금을 긋는 거라구요. 최후의 금을 긋는 자리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를 책임지고 이 자리에 나온다는 것은 형장에 나오는 것과 같은 거라구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구요. 공판정에 나서는 그러한 심정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동정을 바라야 되겠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이 있어야 되겠으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가 감도는 입장에 서야만 생명이 윤택할 수 있는 혜택의 자리가 있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싸워 나오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될 수 있으면 공석에 나타날 때는 '무슨 설교할까? 하고 제목을 미리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사(私)된 결과를 가져오는 거라구요. 그것은 내 지식과 내 조직적인 계획이나 머리를 자랑할 수 있는 기준은 될는지 모르지만 심정을 토로할 수 있는 것은 못 됩니다. 그 대신 설교하기 전에 열 시간 이상 정성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내용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말할 제목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것이 기성교회 지도자들과 통일교회 문선생의 다른 점입니다, 뿌리를 깊게 자라게 해 가지고 나오자. 순은 아무래도 좋다. 벌레 먹었더라도 좋다 이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뿌리만 튼튼하면 그 순은 벌레 먹어 쓰러지더라도 또다시 나온다는 것입니다. 말이야 다듬지 않고 가꾸지 않아도 좋다는 겁니다. 진실된 심정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생사지권을 결정합니다. 그렇다고 노라리가락으로 자기 웅변 하기 위하여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보라구요. '아버지' 하는 것도 여러분이 부르는 아버지와 선생님이 부르는 아버지는 다르다구요. 다르다는 거예요. 그것은 자랑이 아니라구요.다르다구요. 다르다고 보는 것입니다.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전문가가 있다구요. 서도(書道),글씨 쓰는 것을 보게 되면 그런 게 있다구요. 국민학교 학생들이 하늘 천(天) 자를 쓰게 되면, 줄을 딱 맞춰 가지고 이렇게 쓰지요?(칠판에 써 보이심) 이걸 시로우도(비전문가) 가 보면 잘 썼다고 그런다구요. 그렇지만 전문가가 본다면 그게 글자 같겠어요? 그렇지만 어떤 전문가가 이렇게 썼지만. (칠판에 써 보이심) 전문가가 보게 된다면 '히야. 거기에 뭐가 있다' 라고 하는 거예요. 그게 필요하다구요. 그게 필요하다구요. 그 누가 터치할 수 없는, 그 누가 따라올 수 없는, 그 누가 거기에 비교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