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집: 제물의 완성 1971년 09월 0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95 Search Speeches

예수님이 받지 못한 아"의 사'을 받아야 할 재림주

만물에서부터 양자적 승리권을 거쳐 가지고 아들의 승리권을 거쳐 부모의 자리까지 복귀해 올라가야 됩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에는 아무리 잘 믿어도 하나님의 아들은 절대 못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자기 아버지가 계신 곳에 가지 왜 낙원에 갔겠습니까? 낙원은 뭐냐? 천국 들어가는 대합실입니다. 천국에는 혼자서는 못 들어갑니다. 천국은 본래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어 가지고 살다가 죽어서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죽어서 가는 곳이 천국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못 들어갑니다. 여러분도 혼자서는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예수님도 혼자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재현해 가지고 신랑의 입장에서 신부를 찾아 상대를 결정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의 공인을 받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받기는 받았지만 완성적 사랑을 못 받았습니다. 탕감적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와 가지고 사랑을 받아야 됩니다. 완성적인 사랑을 받은 아들은 죽어서는 안 됩니다. 죽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이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다시 와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아들은 뭐냐? 아담의 자리를 복귀한 것입니다. 아담을 통해서 해와가 지어졌기 때문에, 여기서 상대를 찾아 한 가정을 이루게 될 때, 비로소 천도를 밝히기 위한 하나의 부모의 기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 통일교회 술어로 말하면 참부모가 이 땅 위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부모가 나오기 전에 참자녀가 나와야 됩니다. 참자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걸 여러분이 몰라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참자녀의 수속을 어떻게 하느냐? 그것은 통일교회 원리를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심정문제가 대두됩니다. 그리고 참자녀가 참부부를 이뤄 사위기대의 목적을 달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중심삼고 제물을 바쳐 왔기 때문에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지금까지 피를 흘려 나온 것입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출발 당시에는 피를 흘리지 않으면 교회가 서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만 봐도 그랬습니다. 대원군 시대에 그랬잖아요? 피를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 최후에는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재림주님이 이 땅에 와 가지고 아들로서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을 다 받아야 됩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을 했습니다. (판서하심)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완성급까지 가야 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7년이라는 기간입니다. 이상상대는 어디서 생기느냐? 장성기 완성급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축복해 주는 자리가 장성기 완성급입니다. 축복을 받아 가지고 완성적인 7년노정이 통일교회에는 있는 거예요. 그것이 1차 7년노정, 2차 7년노정, 3차 7년노정입니다. 통일교회는 이런 세계적인 노정을 거치는 운명길을 가고 있습니다. 금년이 2차 7년노정에 있어서 4년째를 맞이한 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의 정세는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급변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입니다. 원리의 방향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 하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 한 가지만 얘기합시다. 복귀역사는 잃어버린 역사를 그 모양 그대로 이루는 것입니다. 2차대전 직후에 한국 기독교계에서는 부흥의 판도가, 부흥의 분위기가 벌어졌습니다. 신령한 집단들은 주님이 오신다고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산에서, 혹은 굴에서 그날을 준비했던 무리 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다 가 버렸습니다. 맨 처음에는 이성봉 목사, 박재봉 목사, 무슨 목사, 무슨 목사 목사들이 야단을 하더니 다음에는 장로들로 떨어져요. 무슨 장로, 무슨 장로, 다음에는 권사, 집사 들로 떨어져요. 그러더니 다 지나갔습니다. 역사의 보조를 맞추면서 목사가 지나가고, 장로가 지나가고, 권사, 집사가 지나가고, 이제는 교인의 시대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앞으로 살려면 교회에만 나가서는 안 됩니다. 산으로 들로, 세례 요한이 갔던 길을 다시 가야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먹을 것 먹지 않고, 입을 것 입지 않고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면서 굶고도 살 수 있다고 각오한 사람이라야 앞으로 갈 길을 만날 수 있는 운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건 왜? 교회가 책임을 못 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