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집: 우리의 자세 1972년 07월 2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19 Search Speeches

자기 한 개인은 자기 한 존재- 한한 것이 아니다

이런 입장에서 생각할 때, 자기라는 한 사람은 자기에게만 한하여 있지 않음을 우리는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 하게 될 때 그 나의 배후에는 가정이 연결되는 것이요, 그 나라, 혹은 이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평면적으로 세계 인류를 대신해 있음과 동시에, 하늘이 이 땅을 대해 가지고 주체적인 입장에 서 있다면, 우리한 개체라는 것은 땅을 대신할 뿐만 아니라 주체 되는 하늘을 대신해서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하나의 태도는 나 하나에서 빚어져 가지고 나 하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연결 되어 가지고 사회를 넘고 국가를 넘어 세계까지 인연되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사건들을 우리가 추적해 보면, 그 역사적인 사건이 역사적 기준까지 되어진 이후에는 큰 것으로서 기억될 수 있으되, 그 당시에는 그것이 별로 인간들 앞에 알려지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취급받아 그냥 지나가 버리는 사실들이 많은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무리 역사적 사건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역사적 사건으로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끔 그 사회나 국가는 늘쌍 받아들이지 못한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또, 때가 지나고 나서, 한 시절이 가고 나서, 다음 시절에 와 가지고 어떠한 특정한 인물이면 인물이 거쳐갔던 것을 역사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인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두고 보면, 30여 생애를 두고 싸워 나오던 그의 행로를 두고 볼 때에, 그 시대에는 그가 움직이는 모든 생활 자체를 공인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분이 대했던 환경은 그분을 위한 환경이 아니라, 그분과 상치되는 환경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시대의 유대 교면 유대교, 이스라엘 민족이면 이스라엘 민족을 두고 볼 때, 그들 가운데는 그렇게 바라던 소망인 메시아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그 메시아를 메시아로 모실 수 있는 소수의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이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 비참한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혹은, 유대교로 볼 때는 유대교의 말로(末路)를 예고할 수 있는 비정하고도 통절한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4천년 역사를 거치면서 하나의 선민적인 터전으로 고이 길러 오면서 한 줄기의 소망을 남겨 가지고 지도하셨던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메시아를 보낸다는 그 약속을 따라 가지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4천년 숙명의 그 모든 터전이 현실적으로 이스라엘 민족 개개인에게 연결될 수 있는 환경을 맞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환경에서 메시아라는 소망의 존재를 맞아들이는 이스라엘 민족이 되지 못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왔던 그분을 보내 놓고 나서, 그분의 뜻을 알지 못한 자리에서 쫓아 버린 그 민족과 그 교단은 여지없이 처참한 결과에 봉착 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를 보낸 하나님은 그가 어떠한 사명을 갖고 이 땅에 왔고, 또 그가 해야 할 책임이 무엇인가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아무리 사회가 환영하지 않고 그 시대가 그를 용납하지 않더라도 부정된 그 환경을 타개해 가지고 긍정적인 환경으로 개척해 오셨습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그 사명을 인계받아 가지고 그 뜻을 따라 발전해 나온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역사가 지나고 난 후에야 그가 어떠한 사명을 갖고 왔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추모하고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