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집: 하늘편 1970년 01월 0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21 Search Speeches

마지막까지 하늘편으로 남아질 자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교시해 나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심정은 어디에 뿌리를 박고 있느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 보내심을 받는 기쁨의 그 순간, 그 자리에 뿌리를 박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하나님의 근본사상을 어디에 뿌리를 박았느냐? 십자가에 뿌리를 박았습니다. 피흘리는 자리, 죽음이 가로놓이는 그 자리, 하나님의 뜻을 고수한 그 자리, 백번 죽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심정이 불타오르는 그 자리, 피를 토하며 쓰러져간 그 자리에서 역사적인 새로운 뿌리는 생겨났던 것입니다.

기독교가 지금까지 세계적인 발전을 하게 된 것은 피를 뿌리고 죽어간 예수님의 피의 대가로 인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죽음의 정상을 본받아 기독교는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나라를 추구하는 그 목적이 지금까지 남아졌기 때문에, 2천년의 역사과정이 아무리 험난한 노정이라 해도 그것이 예수님의 죽음과 바꿔졌던 그 희망의 기준을 점령하지 못하고 도리어 죽음으로 싸워 남기신 희망의 기준이 그 험난한 환경을 점령함으로 말미암아, 기독교는 오늘날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 있어서 기쁨의 고개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오래 못 가는 거예요.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들 가운데서 '이 뜻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 한이다. 내가 남과 같이 3년 전에만 들어왔으면, 혹은 10년 전에만 들어왔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런 마음은 고마운 마음입니다. 그 마음은 누구나 칭찬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3년 전, 10년 전에 들어왔으면 뭘 합니까? '그때에 들어왔으면 내가 뜻 앞에 이렇게 되었을 텐데…'라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원하지 않습니다. 내가 '10년 전에 뜻 앞에 섰다면 지금은 이렇게 되었을 텐데…. 3년 전에 들어왔으면 이렇게 되었을 텐데…. 이제야 들어와서 이 모양이 꼴이야' 하면서 지금 들어온 것을 탓하는 사람은 오래 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10년 전에 못 들어와서 대한민국과 더불어 투쟁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쳤구나' 하며 역사적인 가치를 접하지 못한 것을 한탄해야 합니다. 내가 들어오기 전의 3년 도상에서 벌어진 하늘의 큰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한이고, 그것을 보지도 못한 것이 한이라고 해야 합니다.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소망해 나온 그 소망의 결실이 맺어지는 그 순간, 그 자리에 동참하지 못한 것이 한이요, 그것을 보지도 못한 것이 한이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혈족이면 혈족, 씨족이면 씨족을 찾아 나오시는 과정에서 죽을 고비를 넘어오신 그 마음을 가지고 3년사를 한탄하고 10년 사를 한탄하는 사람은 앞으로 소망의 길에 오래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중심삼고 '내가 이렇게 했으면 이렇게 되었을 것인데…' 하는 사람들은 뜻 앞에서 멀어집니다. 두고 보십시오. '뜻'이 3년이 되면 이루어지고 10년이 되면 이루어질까 하는 사람은 뜻 앞에서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주류사상을 책임질 수 있는 주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종새끼입니다. 종새끼. 종새끼가 아니면 양자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피의 쓴 잔을 이어받은 아들딸이라 할진대는 아버지의 슬픔은 바로 그 아들딸의 슬픔입니다. 아버지가 염려하는 것은 곧 아들딸의 염려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말하기에 부끄러운 자신이라고 깨달을 수 있고 그렇게 말하는 것을 무섭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3년, 혹은 10년 이상이 지나도 남아지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생각없이 말하는 사람들은 다 흘러가 버립니다. 나는 그런 사람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