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9집: 종족적 메시아는 예수님의 대신자 1993년 10월 08일, 한국 제주국제연수원 Page #145 Search Speeches

하나님도 참사' 앞-" 절대 복종한다

여기에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절대자 되시는 하나님…. 기성교회와 통일교회의 다른 것은 뭐냐? 통일교회는 신인일체를 사랑을 중심삼고 정착시킨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성 신학에서는 하나님은 거룩한 것이고 인간은 속된 것, 죄 된 것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은 어떻게 하나될 수 있어요? 그거 말을 할 수 없다구요. 절대적인 하나님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가는 곳에는 피를 많이 흘려 왔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끌어넣어 침략하고 탈취한 것입니다. 독재자를 냈다구요. 세계는 그렇게 안 돼요. 하나님의 본성으로 볼 때 그렇게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위대한 것은 뭐냐? 절대적인 하나님조차도 절대 복종해야하는 것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절대적인 명령을 했을 때 절대 복종하는 자를 갖고 싶다면, 하나님 자체도 절대로 복종해야 하는 내용을 갖고 있어야 된다구요.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절대로 하나될 수 있는 상대권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예요? 참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참사랑 앞에는 절대 복종합니다. 이 한마디가 위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뭐라구요? 절대적인 하나님조차도 참사랑 앞에는 절대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은 그 이유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논리적으로 맞다구요. 절대적인 하나님도 절대적인 사랑 앞에는 절대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지 않는다고 하면 하나님 자체가 아담과 해와 완성한 경우 '너희들 두 사람이 사랑을 중심삼고 절대적으로 하나되어라.'고 하는 훈시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는 하나님을 대해서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절대로 하나되어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어떻게 해요? '음, 나는 그렇지 않지만 너희들은 그렇게 해라.'라고는 할 수 없다구요. 그러한 명령을 하기 전에, 아담 해와 자체가 사랑을 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이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자녀가 와서 오라고 하면 가요, 안 가요?「갑니다.」'아버지 이리 와.' 하면 가요, 안 가요?「갑니다.」'아버지가 있는 곳에 너희들이 언제나 오지 않으면 안 되는데 무슨 말이야? 반대로 네가 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구요. (웃음) 수수작용에 의해서입니다.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평화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평화는 상대권으로 평등한 기준을 갖게 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디라도, 높아도 평등, 낮아도 평등한 기준을 언제나 유지하기 때문에, 그러한 사상적인 인연을 준비해 두는 주체인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세계에 있어서는 평등의 세계가 생겨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런 논리가 성립돼요. 중요한 얘기예요. 독재성을 갖지 않습니다.

여러분, 선생님이 좋아요, 안 좋아요?「좋습니다.」좋지만 무서워요, 무섭지 않아요?「무섭습니다.」(웃음) 그게 뭐예요? 모순입니다. 모순된 말입니다. 왜 좋으냐 하면 평등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말하는 것은 자연적입니다. 여러분을 때려도 아프지만 그것을 잊어버린다구요. 그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아무리 차고 '이놈, 바보 같은 놈!' 하고 몇 번이나 영원히 잊어버릴 수 없는 말을 해도 그것을 금방 잊어버린다구요. 왠지 금방 잊어버려요.

자기에게 누구보다도 가깝기 때문입니다. 양심은 몸을 아무리 질책을 해도 잊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체 대상의 일체권에 선 입장이기 때문에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하기 때문에. 육신이 그 양심의 질책에 불평하는 경우는 문제지요?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