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7집: 고향 1989년 02월 12일, 한국 본부교회 Page #294 Search Speeches

고향은 교육의 재료도 돼

그래 가지고, 그거 보면 선생님이 정적인 사람이예요. 고기 보고도 `야, 네 엄마가 울겠구나' 그런 거예요. 그거 죽었다니까 조그만…. `너 엄마가 울 텐데' 이래 가지고 말이예요, 그 고기 보고 운다구요. `내가 울어 줄께' 이러면서 혼자 우는 거예요. 그러면서 지내던 모든 전부가…. 자라는 데 있어서 정서적인 많은 교재를 남겨 주는 곳이 고향입니다. 그럴 것 같아요?

산을 바라볼 때도 잊을 수 없는 모든 정서적인 그물이 쳐 있어요. 또 개울을 볼 때도 그래요. 개울이 있다면 거기에도 수많은 어족들이 살고, 수많은 벌레들이 살고 말이예요. 그런 것들을 전부 다 배움의 재료로 활용할 때는 자기가 크는 데 모든 지식을 공급하는 데 잊을 수 없는 기본적인…. 한국 사람으로서 한국 고향의 산하에 있는 모든 동식물에 대한, 자연계에 대한 것을 교재로 삼아 가지고 자기 내적인 인간이 자라는 데 있어서의 풍요성을 갖추는 데서 많은 재료를 남기는 곳이 고향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고향의 산천이 그리워요. 그렇지 않아요? 봄이 되면 봄동산에, 저 아지랑이 피는 봄동산에 아늑한…. 전부 다 에워 쌓은 그런 동산 가운데서…. 내가 자연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산에 가서 앉아 가지고 낮잠을 자는 거예요. 큰 나무에 기대어 가지고 자연 가운데서 낮잠을 자는 거예요. 그러면서 나물을 뜯어 먹고…. 거 보면 뭐 많다구요. 이런 전부를 잊을 수 없어요.

자, 그런 걸 볼 때, 자기가 인간으로서, 정서적인 인간으로서 자랄 수 있어서 기본적인 교재로써 나한테 제공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여러분, 옛날에 국민학교 시절에 책상에 구멍을 뚫었으면 지금도 생각나지요? 어디가 어떻게 돼 가지고 이렇고 하는 게 생각나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 산천의 모든 나무는 다 같은 나무라도 거기에 나무의 모양 모양이 자기 인상에 남은 것이 자기의 모든 정서적인 면에 있어서 추억에 남고 기억에 남을 수 있는 하나의 교재로서 남겨진 박물관이었던 것입니다.

좋고 나쁜 것도 고향에서 배웠어요. 안 그래요? 고향에서 여러분, 그렇잖아요? 어렸을 때 어떤 때는 동네 애들하고 싸움하고 말이예요, 코가 터져서 피를 흘리고…. 피를 흘리게 되면 엄마 아빠 찾아가지요? 엄마 아빠 찾아가는데, 그 엄마 아빠는 `이놈의 자식아, 왜 싸워 가지고 또 피를 흘리고 들어와?' 하고 남의 사정은 모르고 꾸짖던 생각…. 거 왜 그랬을까 하고 지금 생각하니까 여러 가지로….

어머니로서는, 남자라는 자식이 나가 싸워 가지고 매 맞고 코가 터져 들어오면 안 되지요. 그런 걸 커 가지고 자식을 길러 보니 그런 심정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귀한 것을 회상할 수 있는…. 그때는 `엄마가 왜 그랬을까? 코피가 나고 이러는데도 씻어 주지도 않고 도리어 투정한다고 야단이야' 이랬지만, 지금 철들고 보니 그때 엄마를 붙들고 `엄마, 고마워' 할 수 있었으면 그 엄마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극과 극이예요. `음, 이 녀석 이게 보통이 아니구만' 꿈에라도 승리 얻을 수 있는 그런 인상이라도 남겨 줬으면 좋을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