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집: 1971년도를 출발하면서 1971년 01월 0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92 Search Speeches

예수의 소원과 유대 민족의 불신

그러면 예수님의 소원은 무엇이었느냐? 나라를 거느리고, 민족을 거느리고, 교회를 거느리고, 친척과 가정을 거느려 가지고 거기에서 기쁨의 한 날을 맞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소원이요, 예수님이 오신 목적입니다. 그 한 날이 무슨 날이냐 하면, 인류 역사상에 없는 새로운 부모의 날을 설정하는 날입니다. 이것이 그가 맞이해야 할 기쁨의 한 날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한 날을 맞기 위해서 30여년의 생애를 통하여 있는 정성을 다하였지만, 유대교를 중심삼은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님을 배반했고 요셉가정을 중심삼은 친척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길러 준 양부(養父)의 품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고,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의 품을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이 이후의 생활이 예수님의 3년 공생애노정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나라와 민족과 종족과 가정을 울타리삼아 가지고 철옹성같이 된 거기에서 한 중심이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중심이 동으로 가면 전체가 동으로, 서로 가면 전체가 서로, 남으로 가면 전체가 남으로, 북으로 가면 전체가 북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전체가 그 중심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할 이스라엘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여 준비해 놓은 이스라엘권에 예수님은 들어갈래야 들어갈 수 없는 입장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은 어떻게 되었느냐? 나라를 기반으로 삼기 위해 왔고, 교회를 기반으로 삼기 위해 왔고, 종족을 기반으로 삼기 위해 왔고, 가정을 기반으로 삼기 위해 왔으나 그 모든 터전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으므로 예수님이 설 수 있는 발판은 완전히 없어졌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설 수 있는 발판이 없어졌기 때문에 나라 없는 군왕과 같은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망명객과 같은 입장에도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망명하려고 해도 누가 환영하는 사람이 있어야 망명을 하지요. 이렇듯 예수님은 고독단신의 운명으로 몰린 입장에서 나라를 잃어버리고 교회를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서러웠겠으며, 친척을 잃어버리고 가정을 잃어버리린 것이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그런 입장의 예수님은 어디로 피신해 가지고 자기의 제2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길까지도 완전히 막혀 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노리고 있던 사탄이 예수님에게 `이제 네가 갈 길은 단지 한 길밖에 없다. 죽어서 다시 돌아오는 길 외에는 없다. 살아서는 하나님의 뜻을 계승할 수 없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의 노정을 감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소망하고 왔던, 즉 예수님을 중심삼고 전체를 통합하여 하나님께서 소망하시고 인류가 축하할 수 있는 부모의 날을 설정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찾기 위한 노정이 예수님 이후 지금까지의 2천년의 탕감노정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날을 맞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기쁨의 역사를 엮을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을 중심삼고 이런 기쁨의 날을 맞았더라면, 그 후의 인류역사는 기쁨의 역사로 연결되어 나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몰아냄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찾아 나오던 기쁨의 날인 부모의 날을 설정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결과가 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평화의 기준을 완전히 상실한 채 신음하는 역사를 엮어오게 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