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8집: 복귀섭리의 종착점 1990년 11월 20일, 한국 동대문교회 Page #233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몸과 마음은 절대적인 사'으로 하나돼 있어

우리 인간을 지으신 근본 된 분을 하나님이라고 할 때 하나님은 지(知)·정(情)·의(意)를 갖춘 인격적 신(神)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인간이 왜 하나 못 됐느냐? 이런 문제가 종교상의 타락이라는 개념을 가져온 것입니다. 타락되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의 자리에서 `내 자신이 타락한 것을 전부 다시 시정해서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면 참과 화합할 수 있고 선의 자체에 근원 된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겠다' 하고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이것이 평화를 바라고 희망을 지닌 사람들이 가는 하나의 안위처(安慰處)가 아니겠느냐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몸 마음이 하나되어 있느냐? 어떻게 돼 있을까요? 우리와 같이 하나님도 몸 마음이 매일 싸울까요? 그건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우리와 같이 몸 마음을 갖고 계신 분이지만, 그분 자체에 있어서는 몸과 마음이 영원히 하나되어 있어야 됩니다. 절대자의 중심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하나되어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중심삼고 절대적인 하나를 이루느냐? 우리 인간들이 바라는 돈 가지고? 지식 가지고? 권력 가지고? 아니예요. 그게 무엇이냐? 하나님도 절대자로서 절대적으로 복종할 수 있고, 절대적으로 좋아할 수 있고, 절대적으로 위할 수 있고, 절대적으로 화합할 수 있는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 기원의 근본도 되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도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런 과정을 거쳐서 존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도 근본에서부터 결과까지 통합할 수 있는 하나의 내적인 가치 문제가 없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적 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적 사랑과 인간적 사랑은 무엇이 다르냐? 이제 사랑 문제로 들어갑니다. 현세에 살고 있는 우리 타락한 인간은 악한 자리에 서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싸우는 사람은 악한 것이예요. 몸과 마음이 싸우고 있는 이런 자리에 선 우리들이 바라는 생활 전체, 일생행로 전체, 또 죽고 난 뒤 영원한 생명이 있다면 그 생명 전체의 표제가 되고 중심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그러면 타락한 인간들의 사랑과 본연적 하나님의 참사랑은 어떻게 다르냐?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해결짓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인간적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우리들의 사랑은 나를 중심삼은 사랑, 나를 위하라고 하는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나를 위하라고 하는 이 사랑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겠느냐,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악마로부터 시작되었겠느냐?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사랑이라면 인간들도 하나님같이 하나되어 있을 것인데, 그렇지 못한 입장에 내 자신이 떨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연유된 사랑의 자리에 있지 못한 곳에서 태어난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과 타락한 인간 세계의 사랑은 어떻게 다르냐?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은 전체를 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근본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은 왜 태어났느냐, 왜 계시느냐 이거예요. 오늘날 기성신학에서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절대자이시니 그 절대자와 하나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니까 사랑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느냐? 여러분, 여기 서 있는 레버런 문이 사랑 갖고 있어요? 사랑 갖고 있지요. 그러나 그 사랑이 아무리 위대하고 강하다 하더라도 혼자서는 사랑을 체휼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적 존재가 있게 될 때 시발(始發)과 과정을 거쳐서 기쁨을 소개해 주게 돼 있지 자기 혼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레버런 문이라는 사람이 지닌 사랑은 어디로부터 연유된 것이냐?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종교인들은 하나님을 부모로 모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를 닮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모와 마찬가지의 자리에 세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하다 하더라도 사랑을 혼자 마음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전지전능하니까 사랑도 마음대로 할 수 있지' 할지 모르지만 그러면 문제가 크다는 거예요. 사랑의 대상이 필요 없다는 논리에 봉착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절대적인 중심 존재로서 자기 스스로의 사랑, 하나님적 사랑에 대한 자극과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는 사랑의 상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인간 세계에서 요구하는 물질적인 것, 혹은 지식이나 권력과 같은 그 모든 일체는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영원히 지닐 수 있는 것들입니다.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요. 하나님은 제왕이예요. 지식의 왕이요, 창조주니까 창조의 왕의 자리에 서 있는 분입니다. 또 절대적으로 전능하신 분이므로 권력의 왕의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에게 그런 것들은 필요하지 않아요. 그것은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사랑만은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안 돼 있다는 것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아무것도 없는데 사랑한다는 표시를 하며 `아, 내 사랑' 하며 춤을 춰 보라구요. 그건 어느 모로 보나 미친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것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내릴 수 있는 결론입니다. 그러나 아주 조그마한 카드일지라도, 그것이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 대상적 가치로서 나에게 준 선물이라 할 때에는 그것을 바라보면서 하늘땅을 걸고 찬양해도 좋을 만큼 당당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세계의 모든 것을 다 준다 하더라도 내가 진정 사랑하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어진 이 조그마한 상대물과는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을 내리더라도 그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러니 상대가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냐 이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