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집: 세상 슬픔을 몰아내자 1974년 07월 29일,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Page #57 Search Speeches

종교의 배후를 통해 -사적이고 현실적인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게 될 때에, 하나님은 영원불변하시고 유일이고 절대적인 분이시니 그분을 중심삼은 가정과 세계관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것을 이 인간세상에 주는 것만이 이 비통한 세계를 해결할수 있는 관문입니다. 관문이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세계를 갖다 줘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개척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 방대하고 어려운 난점이라구요.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무슨 도면이 있어 가지고, 블루프린트(blueprint:청사진)가 있어 가지고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런 기획을 그리고 짜 내야 됩니다. 거기에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 하는 문제를 밭견해 가지고 그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 하는 것은 심히도 어렵고 방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실재가 문제 됩니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예요. 하나님이 있다는 것만 알게 되면, 이것도 이론적인 것만이 아니라 가능한 사실이다 이겁니다. 왜? 하나님도 선한 세계 이외의 슬픈 세계를 없애고 싶어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안다면 하나님과 우리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느냐? 하나님과 나하고의 문제라는 거예요.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볼 때, 여러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두고 보면 여러 계층이 있을수 있습니다. 무엇 무엇이 있을 수 있느냐? 그건 종이 되는 길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돼요. 주종관계, 종이 될 수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그 다음에는 좀더 올라가서 하나님과 인간이 관계맺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 것이냐? 양자가 되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조금 나은 길, 그런 길이 있어요. 조금 더 생각해 보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들딸이 되는 길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세계의 슬픔을 책임진다면 어떠한 관계를 갖고 책임질 것이냐? 이런 세 가지 내용을 중심삼고 관계를 지어 가지고 해결할 길밖에 없습니다. 선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악한 하나님일 것 같으면 종을 전부 다 때려 몰고 부려먹고 그럴는지 모르지만, 선한 하나님이기에 종에게 가르쳐 주면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인 중의 선한 주인이니까 어떤 하나님이 되어야 되느냐 하면, 종을 위하는 하나님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 결론이 나온다구요. 그러니 종이 될 수 있는 길을 모르면 가르쳐 주는 하나님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종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양자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면, 그 가운데서 훌륭한 사람을 양자로 택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은 아들딸이 필요하다면 아들딸까지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참된 종과 참된 양자를 고른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진정 사랑하면서도 그들을 못살게 여러 가지로 테스트해 보고 시련도 주어서, 끝까지 참고 견디며 끝까지 위하려고 하는 사람만을 고를 것입니다.

선생님은 원리를 알기 전부터, 성경을 보기 전부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이런 운동을 세계적으로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종교의 배후에 그런 생각과 그런 일을 한 실적이 있으면 하나님은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의 배후에 이런 일을 해온 실적이 있으면 하나님이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는 거예요.

이런 관점을 가지고 많은 책을 보고, 성경 가운데 그런 내용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때, 성경은 과연 위대한 책이요, 위대한 말씀임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발전해 나가는 역사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요, 신약시대는 양자의 시대요, 성약시대는 자녀의 시대라는 관념이 딱 나옵니다.

이 세상에 있어서 슬픈 사람들을 위해서 대변하고 슬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 나온 것이 기독교였더라 이겁니다. 기독교라는 것은 슬픈 사람을 상대로 해서 발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죽는 자리에서 눈물 흘리며 위로하면서 발전한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렇게 볼 때 하나님은 역사적인 하나님임이 드러났고, 현실적인 하나님임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종교예식을 통해 가지고 실제적이며 현실적인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하나님을 만나야 된다는 거예요, 현실 적인 하나님을. 그러므로 현재 하나님이 무얼 어떻게 하고 있느냐 하는 것도 알아야 되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다 하는 것도 알아야 돼요. 그것이 들어맞으면 하나님을 만나지 않아도 하나님이 없다고 부정할 수 없는 거라구요. 그러기에 이론적으로 그런 모든 것을 느껴야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