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집: 개척자 1970년 03월 17일, 한국 통일산업 (구리시 수택리) Page #109 Search Speeches

지난날을 반성하고 -사적인 책임을 다하자

주권 있는 국가의 백성이 되면 타국으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 없는 민족은 보호받을 수도 없는 불쌍한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연의 나라를 잃어버린 민족을 구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을 바라 볼 때,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본연의 나라로 돌아가야 할 한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본연의 나라에 대한 의지를 가져야 되는 것이요, 본연의 나라에 대한 애국심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본연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본향 땅을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본향 땅을 찾기 전에는 본향의 나라를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본향을 찾아갈 입장이 되려면 본향에 있는 부모를 그리워해야 되고,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형제지간에 화목하는 사람이 부모 앞에 효도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산상보훈 가운데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본향 땅에는 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설사 홀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성경의 탕자를 맞이하는 형님과 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돌아오는 동생에게 형님 이상의 가치로서 모든 축복을 돌려줄 수 있는 마음을 갖지 못한다면, 부모의 마음 앞에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효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집에서 부모와 같이 살았던 형님이 진정한 의미에서 아벨의 책임을 다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생각할 때 우리는 나라 없는 백성입니다. 고향 땅을 밟아 보지 못한 백성인 것입니다. 서쪽이 어두워 오면 훤히 밝아오는 동쪽을 향해 가고, 동쪽이 어두워 오면 서쪽을 향해 가는 집시의 무리입니다. 환경에 따라 문제를 결정해야 하는 이런 비운의 행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집시의 무리가 바로 통일교회의 무리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집시 같던 통일교회 무리들이 오늘날 삼천리 반도에 닻을 내리고 하나의 가정을 갖게 된 것은 영광의 날을 맞이하기 위한 출발인 것입니다. 이 가정의 기틀을 넓혀 하나의 종족을 편성하기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고대하셨겠습니까? 이 일이 하나님과 인연된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져 나간다는 사실은 엄청나고도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자리는 예수님이 죽어갔던 십자가의 비운보다도, 예수의 부활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기쁨보다도 더 큰 비장함과 환희가 교차될 수 있는 자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무한한 가치를 지닌 자기 자신인 것을 얼마나 망각한 채 살아왔습니까? 하나님의 소망의 기틀이 되고, 역사의 표본이 되고, 부활의 표준이 되고, 시대의 선각자의 사명을 해야 할 자기 자신인 것을 얼마나 많이 망각했느냐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생활을 해온 데 대한 후회에 사무쳐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망각한 사실에 대해 의분심을 가지고 다시 한번 부딪칠 수 있는 폭발력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과거의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내일을 향한 긍정적인 자아를 세우는 데 정성을 다함으로써 국가를 대하여 충을 다하고 부모님을 대하여 효를 다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삼천만 민족과 혼란된 세계를 향하여 부활할 수 있는 길은 이 길밖에 없노라고 외치면서 세계를 자극시켜야 할 역사적인 책임을 우리가 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국가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아는 것만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여러분에게 촉구해야 할 결론적인 말이 무엇이냐? 선각자적인 개척자의 사명을 또다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 사명에 따라 수난이 비례되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자신과 신념이 없으면 이 길을 감당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 일대를 전도하러 다닐 때 죽음이 동반하는 많은 문제들이 부딪쳐 왔습니다. 자기의 종족이 위협하고, 이방인이 위협하고, 원수들이 위협했지만, 사도 바울은 그 위험을 자기가 응당 받아야 할 선각자의 책임과 개척자의 사명으로 알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자기의 짧은 생애노정에 있어서 역사적인 모든 수난의 행로를 맞이하여, 이것을 규합하고 탕감시켜 나가겠다는 일념 아래서 개척노정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기독교가 수립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사도 바울에 비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축복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하늘의 혈족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반적인 내용을 아는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단 하나 자기 개인 구원을 위하여 그렇게 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여러분은 사랑하는 자식이 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습니다. 그들을 해방시키고 그들이 안식할 수 있는 복귀세계에 있어서, 하나님을 모시고 영원무궁한 행복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이런 엄청난 입장에 여러분은 이미 세움받았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그 길을 갈 수 있는 입장에 세움받았고, 그 가는 길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으면서도 여러분이 책임 못하게 되면 어느 누구에게 변명할 것이며, 또 어디로 피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문제를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모인 지역장이나 또는 지구장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지역장이나 지구장 한 개인으로서 책임할 것이 아니라 가정으로서 책임해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책임시대는 60년대를 마감으로 끝났습니다. 이제부터는 가정적인 책임시대로서 아벨적 가정을 중심으로 가인적 가정을 찾아 세우는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가정이 복귀될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의 가정과 더불어 여러분의 가정이 어떤 가정이 되어야 하느냐? 이런 문제가 이제부터 수습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