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집: 자녀의 날과 그 사명 1971년 11월 1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03 Search Speeches

하나님을 위해서 눈물 흘리" 사람이 되라

그런데 종교 믿는 패들은 별 패가 되어 있다구요. 괴상한 패라구요. 이들은 그저 엎드리기만 하면 운다구요. 울긴 우는데, 다르다는 거예요. 우는 것이 다릅니다. 예를 들면, 통일교회 패들은 쩍하면 웁니다. 우는 데는 물론 회개하니까 울겠지요? 회개하고 울 때는 하나님이 가만히 보시며 '응, 너 그렇구나' 하시는 것입니다. 회개의 눈물을 흘릴 때는 하나님이 돌이켰던 얼굴을 싹 바로잡으시고 감았던 눈을 뜨시고 '응, 그래' 하며 웃으십니다. 이럴 때가 회개할 때라구요. 회개하는 눈물을 흘릴 때는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런 회개를 하고 나서 '하나님, 내가 이제 회개했으니 높아야 되겠소' 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야 너는 또다시 제 2의 아담 해와 같은 조상이 되겠구나' 하면서 또 눈을 감아요. 눈을 감기 마련이라구요. 그렇게 되면 아담 해와와 마찬가지가 아니예요. 알겠어요?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해와도 자기가 높아지겠다고 하고 아담도 자기가 높아지겠다고 해 가지고 하나님을 섭섭하게 만들고 자기들도 울고 그렇게 망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것이 싫다고 해 가지고 '본연의 세계로 돌아가겠소. 하나님의 뜻의 길을 가겠소'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회개해서 하나님이 눈을 뜨셨는데, 거기에서 다시 '난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알았소. 그러니 하나님도 나를 위하는 하나님이 되어야 되겠소'라고 하게 되면 하나님은 후퇴하신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는 자리는 타락한 아담 해와의 자리와 딱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나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죽을 죽을, 망할 망할, 욕 중에서도 세상에서 제일 나쁜 욕의 레테르를 전부 갖다가 붙이더라도, 그렇게 욕을 먹고 그렇게 매를 맞고 그렇게 찢기더라도 나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뜻을 이루시는데 개인적으로 이루지 마시고 세계적으로 이루소서'라고 하면 하나님이 '야 이녀석 쓸 만한데' 그런다는 거예요. 내가 알아보니까 그렇다고 해요. (웃음) '저는 죽을 녀석이기 때문에 당신은 나를 대하실 수 없지만, 당신께서 수고하시고 고생하실 것이 있으면 나를 패 먹든, 잡아 먹든, 독수리 밥을 만들어도 좋소. 백번 천번 세계를 위해서 당신의 수고의 길 앞에 있어서 나는 비료가 되고 거름이 되겠소'라고 하면 하나님의 눈이 번쩍 뜨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하면 회개하고 기도하는 장본인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누굴 위한 거예요? 하나님을 위한 거라구요. 그러니 타락한 인류의 조상 아담 해와와는 다릅니다.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인류의 종자로 남기려고 하신다는 거예요.

예수가 어떤 양반이냐? 이제 돌아가서, 예수가 어떤 양반이냐 하면 예수님이 눈물 흘렸어요, 안 흘렸어요?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눅 10:15)"하고 탄식하였고, 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를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를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마 23:37)"하고 탄식하면서 우셨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입장에서 예수님이 눈물지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상에는 예수님이 울었다는 기록은 두 군데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못해도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에 나갈 때에 울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울음이 자기를 위한 울음이냐, 남을 위한 울음이냐? 이게 문제예요. 예수는 자기를 위해서 울지 않았습니다. 내가 죽게 되면 이스라엘 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나라를 위해서 울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위해서 울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위해서 울게 될 때, 이 세계에 있는 인간들, 나사로같이 사망권내에서 부활의 손길을 바라는 만민을 대신하는 입장에서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생명이 다하는 죽음길, 최후의 절벽에 부딪히는 자리에서도 '내 생명이 스러지더라도 당신의 소원을 성취하시옵소서`라고 한 것입니다.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비참하고 극한 자리에서도 '당신의 승리의 한날을 위해서 나는 가나니, 내 변하지 않는 효성의 마음을 받아 주시옵소서' 하며 눈물을 흘리고 가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다르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