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집: 하나님이 원하는 세계 1972년 11월 13일, 한국 대구 교육회관 Page #46 Search Speeches

영적으로만 '자권을 이루어 "은 기독교

그것은 개인, 가정들도 다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이 다음에 이상시대가 되면, 하나님이 원하는 세계에서는 여러분 부부가 그저 손짓하며 지나가게 되면 시민들은 박수를 쳐 주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때가 되면 좋겠어요? 그러니 바람을 피우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부부가 돼서는 안 되는 거예요. ‘야! 저분들이…. 저런 분들이…’그럴 수 있어야 된다구요.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에 있어서….

문제는 나에게서부터 출발됩니다. ‘나' 라는 사람을 볼 때, 개인으로 살다가 죽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한 번 세계를 움직이고 싶지요? 얼굴은 자기 멋대로 생겼지만 전부 다 세계적인 사람,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가야 할 길입니다. 누구나 따를 길이라구요. 그게 정상적인 욕망을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인간이 최후에 도달하고 싶은 것은 뭐냐? 최고 되시는 분의 사랑의 대상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최고의 분이 누구냐 하면 우리 아버지인 동시에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인간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원수의 아들딸도 못 되고 원수의 종새끼가 되어 있다는 거라구요. 이것을 하나님이 빼앗아 가지고…. 사람이라 해야 원수의 세계에 있는 사람 밖에 없으니, 사람을 필요로 하는 하나님은 그 원수 세계에서 원수의 괴수 이상으로 하나님을 흠모하는 사람을 만나시지 않고는 위신상 사람을 하나님편으로 끌고 가실 수가 없다는 거라구요, 절대자의 위신상.

그래서 원수에게서 빼앗아 온 사람들 가운데에 세계적으로 하나님편에서 가지고 충신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나오게 될 때에, 그 사람을 한 단계 높여서 무엇을 만들 것이냐? 양자를 만들자는 거예요. 그것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 한꺼번에 안 된다는 거예요. 참된 종을 찾아와 가지고 그 종이 세계적인 대표가 되거들랑 비로소 양자를 만들자 그거예요. 그 양자를 세계적 대표의 자리에 끌어올릴 수 있는 한계점까지 이르게 되거들랑 비로소 아들을 보내자 이거예요. 아들을 보내 가지고는 뭘하자는 것이냐?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상을 이루자 그거예요. 그것이 다르다구요.

그러면 아들을 왜 보내야 되느냐? 양자면 그만이지. 이것이 문제예요. 그건 타락을 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인간은 혈통적으로 유린당했다 이겁니다. 사탄의 핏줄을 받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본래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혈족으로서, 하나님의 핏줄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태어나 가지고 장성해서 성숙해 가지고 사랑이상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이 출발해 가지고, 태어나는 것도 하나님으로부터, 기뻐하는 것도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사랑이상도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했어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타락했기 때문에 사탄의 것이 되었습니다. 출발지가 달라졌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돼요.

자식이라는 것은 모든 것이 아버지로부터 시작하는 거라구요. 타락된 인간 세상에 있어서 잃어버린 아들딸을 다시 찾기 위해 끌어와 보니, 사탄의 핏줄을 받고 태어난 아들을 끌어와 보니 출발지가 남의 것에서부터 시작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야 양자 이외에는 될 수 없는 거라구요. 하나님의 아들이 못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양자밖에 못 된다는 거예요. 양자가 계대(繼代)를 하게 되려면 직계 아들 이상 효성을 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구약 역사는 종을 찾는 역사요, 신약 역사는 양자 편성 하기 위한 역사입니다. 양자의 개인, 양자의 가정, 양자의 종족, 양자의 민족, 양자의 국가, 양자의 세계를 편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육을 중심삼은 양자권을 이룬 기독교문화권이 아니라, 영(靈)과 육(肉)이 합해져 가지고 양자될 수 있는 그런 기독교문화권이 아니라, 다시 말하면 영과 육을 합해 가지고 지상천국에도 살고 천상천국에도 들어갈 수 있는 자리에 선 양자가 아니라 몸뚱이는 잃어버리고 영적으로만 양자권을 이루어 놓은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이 땅 위에 발판이 없다 이거예요.

당시에 영과 육을 대표한 이스라엘 민족이 메시아를 중심삼고 하나됐다면 세계적인 국가를 천상세계를 대신한 국가로서 지상에 주권을 갖추어 영육 완성한 터전이 결정됐을 것인데, 예수를 죽여 놓음으로 말미암아 예수의 몸뚱이는 사탄이 가져갔습니다. 이래서 기독교의 도리는 십자가의 도리가 아닙니다. 부활의 도리예요. 십자가는 사탄의 요구를 충당시켜 줄 수 있는 조건의 제시물이라구요. 부활하기 위해서 피를 흘린 그 공로를 믿고서 구원을 얻는 것이지, 십자가를 믿고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오늘날 기독교가 이 근본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무리 예수가 십자가를 졌더라도 부활하지 않았으면 다 수포로 돌아가는 거예요. 부활의 도리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기독교의 말로는 끝날에 가서 추풍낙엽같이 떨어진다 이겁니다.

부활한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십자가를 지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구요.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가지고 부활을 시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의 도리의 목적을 찾기 위한 과정이 십자가의 도리입니다. 길이 이렇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만을 남기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구요. 부활이 없으면 십자가도 다 소용이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부활의 목적을 찾아 이루는 교단이 되지 않고서는 끝날에 가 가지고 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