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8집: 우리의 갈 길 1986년 01월 24일, 한국 한남동공관 Page #271 Search Speeches

책임분담을 못 하니 하나님의 뜻이 -장돼

이박사도 그렇지요.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의 전통을 중심삼고 볼 때, '나'라는 남자를 주장하는 데 있어서는 뭣을 주장해도 다 가짜였다구요. 뭐 여기 윤박사도 가짜고 다 가짜였다구요. 아무리 훌륭한 분도, 실례지만 남이 보면 전부 가짜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시인해야 합니다. 가짜였다면 어떤 가짜냐? 악마의 지팡이로 영위하는 가짜라는 것입니다. 요걸 몰랐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뜻을 파탄시키는 지팡이로서의 가짜라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가짜라면 좋아요. 그런데 어디 가서 파괴를 조성하고 혼란을 자초하는 지팡이, 악마의 지팡이로서의 가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나이 많은 교수님들, '나는 교수로 살아왔다. 이만하면 내가 대한민국에서 갖춘 바의 지식에서는 그래도 첫째 간다 해야 섭섭치 않다' 이렇게 내세울지 모르지만, 악마의 지팡이로서 가짜 노릇 하며 하나님의 뜻에 대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돼요. 이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러면 예수가 장가가지 못한 얘기부터 다시 해야 하니 돌아가자구요. 예수가 왜 장가를 못 갔느냐? 장가를 함부로 갈 수 없어요. 구멍이 뚫어졌다면 땜질을 할 수 있게 각도를 맞추어야 합니다. 사각으로 뚫어졌으면 사각의 쪼각을 만들어야 된다구요. 그게 기본적인 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연장되어 나온 것입니다. 잘못하여 구멍을 맞추지 못하고 때우면 암만 때웠다 해도 합격이 아녜요. 폐물이예요. 그것을 하나님이 하시면 하루 저녁에도 할 수 있겠지만 그 일은 인간의 책임분담입니다. 인간의 책임분담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제시한 책임분담이라는 말은 위대한 말입니다. 오늘날 인류역사를 하나님의 섭리와 더불어 상대적 입장에서 관련을 지을 수 있는, 해결지을 수 있는 말이 책임분담이라는 말입니다. 책임분담을 못 하게 될 때는 하나님의 뜻이 연장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도 이런 운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책임에는 결사적이어야 합니다. 뭐 누구와 의논할 문제가 아니예요. 절대적이예요.

절대적인 표본을 중심삼고 결사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적당히 가다가 길거리에서 만나서 점심도 먹고 들를 데 들르고 '통일교회 한번 가자. 선생님을 만나 보자. 통일교회 말씀 좋다니 가서 들어 보자' 하는 곳이 아니예요. 그래서 갈 수 있는 좋은 곳이 있겠어요? 여러분은 악마로 말미암아 어긋난 자리에 살고 있고, 악마의 지팡이로서 하늘을 도리어 방해하고, 본연의 심정세계를 파탄시키는 데 있어서 지팡이 노릇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학교에 나가 공산주의 이론을 배웠다고 자랑하는 학생들을 때려잡아 죽인 거예요. 이 놀음 하고 있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