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집: 소망인 이상천국 1959년 02월 2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99 Search Speeches

신부(성도)의 책임

하나님은 예수님이 왔다가신 후 2천년 동안 만나기 위한 준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끝날에 하늘의 신부를 만나기 위하여, 영계에 가서 2천년 동안 하나님 앞에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며 준비하고 계십니다. 가신 예수님에게는 신랑으로서의 책임 분야가 있고, 땅 위의 인간들에게는 신부로서의 책임 분야가 있습니다. 그런 연고로, 신랑되신 예수님께서는 영계에 가서 2천년 동안 그 책임을 감당하는 수고를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땅에 남아 있는 신부들이 어떻게 신랑을 만날 것인가, 먼저는 책임을 완수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땅 위에 나타날 책임을 완수하고 나타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책임을 완수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대가로 하늘의 선물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부의 입장에 있는 전세계 기독교인들에게는 남아져 있는 신부로서의 책임을 완수해야 되겠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 하셨습니다.

우리는 책임을 수행하는 노정에서 주기 위해 싸우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하루도 마음을 편하게 갖지 못한 신랑된 예수와 마찬가지로 역사 노정을 거쳐 오면서 땅을 위하여 싸운 그 무리들의 심정 앞에 부끄럽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각자가 책임을 다한 후에야 예수를 만날 자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오늘날까지 타락한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책임을 다한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간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도 낙원에 계십니다. 낙원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대합실입니다.

그러면 인류의 소망은 무엇이뇨? 타락의 원한을 해원할 수 있고, 복귀의 노정을 거쳐서 하늘의 사무친 원한의 조건을 탕감하여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였나이다'할 수 있는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예수께서 2천년 동안 준비하여 찾으려 하시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를 만나고 싶은 심정에 사무쳐 오늘날 생활적인 분야에서 예수의 서글펐던 역사적인 조건을 우리가 청산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서글픈 걸음으로 가신 모든 역경의 노정을 우리는 승리하여 기쁨으로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이 개척노정을 걸어 골고다로 가시는 예수의 길을 가로막고, 승리의 노정을 개척하여 예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는 책임을 완수한 입장에서 예수를 맞이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에게 보고 싶은 마음이 어디 있고 가고 싶은 마음이 어디 있습니까. 보고 싶은 마음도, 가고 싶은 마음도 없는 우리입니다. 보고 싶은 마음에 사무쳐 자기 일신이 찢기고 죽임을 당하는 자리에 갈지라도 보고 싶은 마음으로 그것을 넘을 수 있는 간절한 심정을 가진 무리가 땅 위에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2천년 동안 보고 싶어 찾아오신 예수를 만날 면목이 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보고 싶사옵니다. 하늘이여! 예수의 소원이 무엇이었사옵니까? 그의 소원은 이 땅과 하늘이 이상천국이 되는 것이었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 소원의 천국이 건설되기 위해서는 천국에 살 수 있는 백성이 있어야 되고, 천국을 이룰 수 있는 땅이 있어야 되고, 그에 따른 천국의 주권이 있어야 되고, 그 주권을 움직일 수 있는 하나의 통치자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 땅에 사는 만민이 천국백성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것이 보고 싶사옵니다' 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땅이 아무리 넓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땅은 한 조각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내 것이다'할 수 있는 땅도 없습니다. `영원히 사탄이 침범할 수 없다'할 수 있는 한 조각의 땅도 갖지 못한 예수였습니다.

그러한 예수의 이념이 하늘의 이념이요, 땅에 건설해야 할 지상천국이 이념이거늘, 그 이념이 보고 싶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싶어서 허덕이며 찾아 헤매는 무리가 있어야겠기에 예수는 찾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문을 두드리라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