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집: 오! 아버지여 어서 오시옵소서 1958년 03월 0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80 Search Speeches

끝날의 성도가 지녀야 할 신앙기준

믿음에 대한 소망, 생명에 대한 소망, 사랑에 대한 소망의 모습으로 살고 있느냐를 항상 아버지 앞에 직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옳소이다 아버지여! 나는 아버지를 믿겠나이다. 아버지는 날 못 믿는 다 할지라도 나는 아버지를 믿겠나이다. 아버지는 나를 버려도 나는 아버지를 버릴 수 없나이다'라고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생활해야 하겠습니다.

천륜이 변할지라도 천상의 어떠한 존재물이 나를 배반할지라도 나는 아버지를 배반할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진 주인공, 천상천하의 어느누구도 믿지 못할 자리에서 믿어줄 수 있는 마음을 지닌 하나의 주인공은 없을 것인가.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인간을 찾을 수 있는 소망의 한날을 바라셔서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서글픈 아버지의 사정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교회가 있습니까? 인간들은 이것을 몰라주는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하늘의 뜻을 품고 세상에 나타나는 사람은 버림을 받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원수였습니다. 버림받지 않는 사람, 원수 아닌 사람은 오히려 거짓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가정에서 발붙일 곳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여 준비하였던 세례 요한 일파로부터 배척받았습니다. 4천년 동안 수고하여 준비해 놓은 교단으로부터도 배척 받았습니다. 택한 이스라엘, 아브라함의 혈족으로부터 핍박받았습니다. 온 인류에게 핍박받았던 것입니다. 또 영계로부터도 버림받았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기록된 성경 말씀과 같이 비참한 입장에서 운명하셨던 것입니다. 그런 비통함을 느끼신 분이 우리의 구주요, 인류의 구주요, 우리의 지도자였다는 것을 여러분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그 예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엘리야도 이스라엘민족 앞에 배척받고 몰림을 당하여 쫓겨나갈 때에 “아버지여, 나만 남았나이다. ”라고 호소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심정을 통할 수 있는 한때를 가져 보았습니까? 3천만 민족이 모두 배척하더라도, 세계 24억의 인류가 모두 배척하고 천상에 간 모든 영들이 모두 배척할지라도 `나만은 당신을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심정을 체휼한 사람은 지옥에 갈래야 갈 수 없고, 이 땅에서 망할래야 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무엇으로 깨뜨릴래야 깨뜨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하고 호소했던 그 마음 하나가, 사망의 권한을 짓밟고 올라설 수 있는 하나의 중심적인 포인트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민족으로부터 배척받았고, 교회로부터 배척받았고, 종족으로부터 배척받았고, 또 보이지 않는 영계의 사탄에게도 배척받았습니다. 즉, 어느누구 한 사람의 친구도 없는 예수였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이 오늘날 인류의 구주로 나타날 줄 당시의 사람들이 꿈엔들 생각하였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새역사 창조의 기준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 불변의 심정을 갖고서 아버지가 내 생명의 주인이요, 생활의 주인이요, 사랑의 주인이라는 마음을 품고 살았던 분입니다. 예수님의 믿음과 생명 그리고 사랑은 어느누구도 자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은 기독교는 어느 민족 국가에 들어가 두들겨 맞더라도 쓰러지지 않고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 나오고 있는 여러분들, 여러분들이 인류를 위하고자 할진대는 예수님이 믿었던 신앙의 내용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망의 길을 무릅쓰고 생명을 바칠 수 있었던 신앙기준, 즉 자신의 몸까지도 희생할 수 있었던 신앙기준을 끝날의 여러분들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그러한 신앙의 기준이 끝날의 성도에게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