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집: 제4회 부모의 날 말씀 1963년 03월 2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27 Search Speeches

부모의 심정을 붙"고 끝까지 나가자

또 보라구요, 선생님으로 말하면…. 여러분 기도해 보라구요. 선생님으로 말하면 이 땅 위에 태어날 때 옥동자로 태어난 거예요. 태어날 때에 귀하게 태어났어요. 이 땅 위에 태어날 때 본래 하늘의 천성의 인연을 갖고 왔기 때문에 귀한 몸으로 태어났다는 거예요. 그렇게 고생하고 그렇게 천하게 살게 안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안 돼 있다 이거예요. 그런 운을 가진 그런 심적 기반을, 배후를 가진 사람이 이렇게 고생함으로 말미암아 그 고생 덕에 삼천만이 바라보게 되고 그 고생 덕에 인류가 해방을 받는 거라구요.

그런데 여러분들, 통일교회 교인들이 선생님을 언제 봤다고 선생님 대해서 뭐 어떻고 어떻고…. 그로 말미암아 천적인 운세는 자기들 앞으로 접어들기 때문에 심정의 인연의 세계에서는 사람들은 반드시 공이 있는 곳에는 머리 숙이고 가고 위하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리법도인 연고로 그 앞을 지나고 그 인연을 앞에 놓고 살게 될 때는 반드시 머리 숙이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아는 법도예요. 이런 인연이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이상 야릇하거든요.

내 우리 애기들 보고도 지금 가만히…. 이 애들이 어떻게 될 것이냐? 내가 가르쳐 주는 도리가 이렇고 하늘이 세워서 인류를 수습해야 할 법도가 이런데 그 법도를 지도하는 내게는 그게 참 궁금하거든요. 실험을 하는 거예요, 실험을.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오늘 부모의 날에 대해 말하게 될 때에 말이지요, 여기 모인 우리 식구들 대해서 부모의 심정도 심정이지만 자녀에 대해서, 진정 자녀에 대해서 심정은 어떻게 가져야 되느냐, 이걸 어떻게 다리 놓아 주느냐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이걸 생각할 때 역시 역사적인 모든 인연이 여기서 지탱해 돌아가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아버지 어머니 부를 때에, 아버지 어머니 부르려고 할 때에는 이 복귀도상에 있어서는 제일 어려운 자리에서 아버지 어머니를 불러야 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꽁꽁 동여매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민족을 대표해서 싸우는 데 있어서 민족 앞에 홀로 서 가지고 '아버지!' 하고 부를 때는, 혼자 부르더라도 삼천만 민족을 대표해서 그렇게, 그저 고통 가운데서 하늘을 염려하며 울부짖고 기도하게 되면 그 개인이 개인이로되 개인이 아니예요. 삼천만 민족 전부가 하나님을 얽어매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적인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라구요.

여러분들이 이제 지방에 나갈 거예요. 어차피 남은 멀지 않은 기간을 우리는 달려야 되겠어요. 달려야 되겠어요. 가까운 시일 내에, 멀고 빠르게 범위를 잡아서 여기에 인연을 맺어 가지고 여러분들이 거기에서 아버지를 부르게 될 때 우선 그 땅과 그 지역이 거기에 동화되어 머리 숙이게 되는 거예요. 이 길을 어떻게 만들어 놓느냐 이거예요.

그래, 지금 삼천만 민족을 어떻게 해 가지고 머리 숙일 수 있게, '아버지!' 할 때에 '예, 옳습니다!' 할 수 있게 어떻게 만들어 놓느냐 이거예요. 그렇게 만들어 놓는 것은 잘먹고 잘살자는 게 아니예요. 부모의 심정, 아버지가 보고 싶고 어머니가 보고 싶어 그 품에 안기기 위해, 해방의 왕자가 돼 가지고 모든 것이 거침없이, 천하에 거침없이, 춤을 추나 뭘하나 만민이 다 영광의 상징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 한때를 맞기 위해 찾아가는 것입니다. 부모를 모시고 싶은 갈급한 마음, 이 마음에 불타 가지고 모진 시련도 나의 갈 길로 알고 응당히 가야 할 책임을 짊어지겠다고 싸워 나가는 그런 사람들이 되면 필시 그런 날이 있을 것을 나는 여러분 앞에 약속하는 것입니다. 또, 사실 선생님이 지금 이렇게 나오고 있다구요.

이제는 기도가 둘밖에 안 남았어요. 기도가 둘 남았어요. 하나는 이 나라에 대한 최후의 문제요, 하나는 세계적인 최후의 문제예요, 공산당 대해서. 그것 외에는 선생님이 소원이 없어요. 때가 이만큼 접근해 왔으니 여러분들이 현재 정세를 보더라도 그런 단계에 왔다는 것을 아실거예요.

그렇게 알고, 선생님이 고생을 했으니 여러분들도 그렇게 알고, 참고 부모의 심정을 연결시키기 위한 최후의 장벽 앞에 있어서 있는 정성을 다하라 이거예요. 예수께서 골고다 산정에서 아버지의 심정을 붙들고 호소한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권능을 제시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도탄 중에서 밀려가는 사람 되지 말고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면서 붙들고 심정을 거기에 엉클어 놓는 여러분이 되라 이겁니다. 그렇게만 되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승리의 아들딸이 될 거예요. 그러한 자리에서 그러한 각오를, 그러한 결의를 하는 이 시간이 부모의 날입니다. 알겠어요? 「예」 알겠어요? 「예」 알겠어요? 「예」

그러면 우리는 가야 되겠어요. 가야 되겠어요. 끝까지 가야 되겠어요.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은 슬픈 사람들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슬픔의 날을 맞는 것이 아니라 기쁨의 날이 틀림없이 온다는 것입니다. 약속하겠지요?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