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집: 신앙자의 각오 1969년 11월 3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02 Search Speeches

목적 달성과 절대적인 믿음

여러분 개인 개인은 하나의 작은 산봉우리와 마찬가지입니다. 그 산봉우리는 반드시 그 동기가 되어 있는 산맥을 통해서 뻗어 있습니다. 자기가 모든 산맥을 거느릴 수 있는 주봉이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고 절대적 입장이 되어 있지 못하면 언제나 상대적 입장에서 무엇을 추구하는 입장, 즉 절대적인 그 무엇을 찾는 입장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주봉이 아닌 하나의 산봉우리임에 틀림없기 때문에 주봉을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주봉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는,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시야가 달라집니다. 지금까지는 그 골짜기에 있는 마음밖에 안 보였던 것입니다. 자기가 처해 있는 봉우리에서 더 높은 저쪽 봉우리에 대해서는 깜깜 무소식이었어요. 알려고 해도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 봉우리에 대해서 알려면 그 봉우리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야 됩니다. 그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순응해야 합니다. 절대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절대적으로 믿기 전에는 가르쳐 주어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학교에 가서 공부할 때, 대학교면 대학교에서 교수가 강단에 서서 이것은 이렇다고 강의를 하면 학생들은 그것을 실험해 보지 않았지만 그 교수를 믿기 때문에 그 교수의 강의 내용을 백 퍼센트 다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모든 장애 요건을 제거한 입장에서, 교수가 가르치는 내용을 전부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하는 결의 밑에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만약에 자기가 그 교수의 강의 내용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즉 그 교수를 믿지 못한다면, 그것을 자기가 모두 검토하고 실험하여 수십년 동안 강단에서 지내온 교수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낮은 봉우리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 높은 봉우리의 사정을 알려면 높은 봉우리를 절대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비판해 가지고는 현재의 자리에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발전할 수 없는 거예요. 그 이상을 넘어가려면 무한한 투쟁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환경이 갖추어져 있는데, 길이 모두 닦어져 있는데, 그 닦여진 길을 가면 될텐데도 불구하고 그 길을 가지 않고 자기 스스로 알아서 가겠다고 한다면 무한한 투쟁을 해야 하고, 그래도 그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길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가 찾아가야 할 그 목적, 우리가 소망하는 최후의 기준은 얼마나 큰 것이냐? 그것은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국가적인 기준이 아니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적인 기준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그마치 역사성을 초월한 기준입니다. 그 기준이 바로 우리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천주주의입니다. 즉, 하늘땅 전체를 합한 내용을 지닌 인간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 높고 귀한 가치를 추구하는 입장에서 그것을 믿지 못하여 자기가 전부 다 실험해 보고 알아 가지고 가려고 한다면 못 갑니다. 믿어야 합니다. 믿는 데는 상대방이 주장하는 바를 내가 주장하는 것 이상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만약 그 주장하던 사람이 쓰러지는 날에는 자신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싸움을 지금까지 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하라'는 한계점이 어디냐? 그것은 역사성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절대 권한에 가까운 기준을 중심삼고 일치될 수 있는 자리, 즉 최후의 기점과 연결될 수 있는 그 자리를 중심삼고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하나님에 대한 상대의 자리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그러한 자리, 그러한 기점을 하나님의 심정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