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집: 제4회 부모의 날 말씀 1963년 03월 2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10 Search Speeches

부모의 날을 맞게 된 자녀의 입장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부모의 날, 이날 가운데는 고통이 깃들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이날 가운데는 무한한 슬픔이 깃들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이날 가운데는 역사노정에 있어서의 어느 한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 혹은 어느 주의 사상을 가지고 그 주의를 위하여 투쟁한 어떤 위대한 열사보다 더 고통 가운데서, 더 슬픔 가운데서 이 길을 닦기 위해 투쟁해 나온 하늘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지 않으면 부모의 날을 모실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언제 그 입으로 부모의 날이라고, 부모라고 불러 볼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늘은 이런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수고의 노정을 거쳐오면서 오늘날의 통일교회 선생님이면 선생님 하나 세우기 위해서 무한히 노심초사했다는 것입니다.

약한 것이 인간입니다. 가다가 지치는 것이 인간입니다. 가다가 자기 개체를 중심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선생님이 나오는 데에 있어서 지금까지 가까운 친구들을 다 데려갔어요. 내가 비밀리에 의논할 수 있는 사람은 다 데려갔단 말이예요. 가정에 있어서도 뜻을 같이할 수 있고 자기의 모든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사람은 데려간 것입니다.

믿을 수 있는 길을 다 끊어 놓고 나를 이 길로 내몰았는데, 이런 시련을 거치게 해 가지고 여기에 있어서도 쓰러지지 않고 지치지 않고 남아질 수 있어서 오늘날까지 나온 것입니다. 이리하여 3년 전부터 이 부모의 날을 우리가 가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무한한 복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부모의 날이라는 것을 기념하게 될 때는 피살이 떨리는 자세로 참석하지 않으면 안 될 두려운 이 자리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부모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자리는 어떻게 되느냐? 아까 말한 대로 하늘 앞에 맺혀졌던 슬픔의 전부가 참부모와 참자식의 심정을 세우고 나오게 될 때는 다 해소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우리를 낳아 줄 수 있는 혈연적인 인연을 세워 놓았으니 그 부모의 유업은, 그 부모가 갖고 있는 모든 유산은 자식의 것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부모가 규합할 수 있는 모든 인연도 그 자식에게 상속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사랑하던 하늘도 그 자식에게 상속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했으면 그 아들딸도 아버지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 부모의 인연을 중심삼아야만 타락한 인간이 하늘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부모의 심정과 일체되는 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가 와서 싸우던 생활적인 목표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자신들도 그래야 됩니다. 참부모를 만났더라도 참부모의 품에서 사랑받는 아들딸이 먼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 앞에 있어서 독생자로서 사랑하는 단 하나의 아들이로되 그 예수가 뜻을 대하여 나서게 될 때, 하늘 뜻을 대신하여 나서게 될 때 하나님 앞에 사랑받는 예수가 못 된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참부모를 알아 가지고 모실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할지라도 참부모의 품에서 사랑받는 여러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목적이 아닙니다. 참부모의 사랑을 받으려면 저 끝에서부터 품고 들어와서 사랑받아야 됩니다.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가 참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만민 앞에 부모와 자식지간에 맺혀진 원한의 담을 타개해 놓고, 길을 닦아 놓고, 만민이 갈수 있게끔 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야 비로소 아버지 품에 품기어 자녀의 입장에서, 아들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때 해야 할 예수의 사명인 것을 알았을진대는, 오늘날 여러분들이 부모의 날을 맞이하여 부모를 알고 부모를 모실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다 할 지라도 부모의 무릎 앞에서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인연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 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탄식권에서 부모님이 친히 이런 부모의 길을 닦기 위하여 수고한 기준을 세워서 닦아 놓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수시로 이 평면적인 기준─종적인 기준이 아니예요─에서, 즉 횡적인 기준에서 대할 수 있는 환경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효자 효녀가 되는 비결은 어디 있느냐? 효자 효녀 되는 비결은 어디 있느냐? 예수는 독생자로되 그 자신은 내적 심정에 있어서는 효자의 자리에 있지만 사명적인 분야에 있어서 만민을 대표할 수 있는 효자의 표준으로는 설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