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4집: 3대 주체사상 1990년 07월 01일, 한국 본부교회 Page #94 Search Speeches

효자.충신.성인의 길

사탄의 철망에서 어떻게 벗어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뭐냐? 앞으로 하나의 세계가 되어 가지고 내가 국경을 넘어서 부처끼리 재미있게 사랑하며 사는 그 가운데 찾아가게 되면, '어서 오소' 하면서 자기들이 사랑하며 사는 보금자리, 이불을 펴 놓고 자고 있던 자리를 전부 넘겨 주고 자기들은 속옷 하나 가지고 가서 그 문전을 지키면서 자더라도 '우리는 행복합니다' 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갖고 사는 것이 효자 효녀들이 사는 방법입니다.

자기 부모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서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행차해서 자기 안방에 와서 잔다 할 때는 그 10배 100배 해야지요. 말이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그래 여러분들 효자가 되고 싶지요? 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도 나를 위하고, 어머니 아버지도 나를 모시고, 말도 나를 위해서 하고 관심도 늘 나에 대해 가져라 그러면 그게 효자예요? 「아닙니다」 할아버지가 침을 뱉든 할머니가 침을 뱉든, 어머니가 아랑곳하지 않고 형제들이 모르는 체하더라도 내가 할아버지를 알아주고 할머니를 알아주고 집안 전체를 알아주고도 잊어버리는 사람이 되어야 역대에 남을 수 있는 효자의 반열 행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내가 효자다. 효자 되기 위해서 이런다' 그것은 가짜 효자예요. 그거 맞는 말이예요, 안 맞는 말이예요? 위하고 잊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 효자의 반열에 들어갑니다. 어떤 사람이 충신이냐? 모든 각료들 가운데 내가 왕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떡도 해다 주고 무엇도 해다 주고, 왕을 모시는 신하들이나 왕후를 모시는 시녀들이 전부 다 책임을 못 하더라도 그걸 보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그걸 대해 잔소리하면서 내가 그 이상 해 가지고 그 환경이 그럴 수 있게끔 가르쳐 주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됐다'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잘해야지' 해야 합니다. 왜? 대한민국보다 더 큰 나라의 왕이 있고, 천하에는 천자가 있고, 하늘나라의 왕자가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라는 한 분야의 대표밖에 못 되는 충신만 가지고는 내 욕심을 채울 수 없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그런 각료들 가운데 살살 말만 잘하고, 왕을 위해 준비한 좋은 옷을 자기가 먼저 입어 보고, 좋은 음식을 자기가 먼저 먹어 보는 사람이 충신이예요? 아니예요. 정반대예요. 자기 권한을 세우기 위해서 모략 중상해서 자리를 잡아 가지고 왕을 모시는 사람은 충신이 아니예요. 자기 출세와 충신의 반열의 내용이 엇갈리게 될 때는 길이 둘이지 하나가 아니예요. 진짜 충신의 길은 각료들이 다하지 못한 것을 다하고 또 하고 또 하면서도 잊어버릴 수 있는 길입니다. 알겠어요? 「예」

일을 하고 나서 기억한다는 것은 자기가 중심이 되는 거예요. 자기가 남아지면 안 됩니다. '나는 없고 시작부터 끝까지 군왕만이 있소이다' 할 수 있는 그러한 기반에서부터 위하고 잊어버리고 또 위하겠다고 할 때 충신이 정착할 수 있는 원칙적인, 천리적인 기원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성인들도 그래요. '아이고, 성인이 가르쳐 준 것을 가지고 내가 성인되겠다' 하는 오늘날 소위 학자라는 사람들, 성인이 가르쳐 준 것 가지고 내가 성인 대신 대접받겠다고 한다구요. 성인의 종이 되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다구요.

윤박사도 그렇잖아? 물리학을 배워 가지고 내가 물리학계의 장이 되겠다고 자기 중심삼고 생각했지? 그것은 성인의 도리, 충신의 도리, 효자의 도리의 전통적 행로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자기는 없어지고 만국 만민을 위해서, 만국 만민의 행복과 해방을 위해 가면서 그 모든 것을 주고도 잊어버리겠다고 하는 것이 천운이 환영할 수 있는 전통적 성인의 도리의 정로이느니라. 「아멘」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