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집: 위하여 사는 세계 1975년 01월 16일, 한국 서울 조선호텔 Page #328 Search Speeches

통일교회가 세계적 발전을 할 수 있-던 이유

이런 것을 놓고 볼 때 도대체 문 아무개라는 사람이 머리가 좀 모자라지 않느냐 하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문제는 간단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기성교회 목사보다도 기성교회 교인을 더 사랑할 수 있고 통일교회 교인들이 기성교회 목사를 대해 가지고 그들의 교인들보다 그 목사를 더 사랑할 수 있느냐? 더 위해서 존재할 수 있느냐? 이것이 가능하다면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통일교회는 20년의 역사를 지내왔습니다. 여러분들은 통일 교회에 대한 별의별 소문과 논란의 말을 듣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는 땅에서 밟혔지만 거기에서 세계적 발전을 해왔습니다. 어떻게 해서 발전했느냐? 민족이 배반하게 될 때는 세계를 향해 갈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민족이 가야 할 길은 세계를 위해 가는 길이 정도(正道)이기 때문에, 이 길이 틀림없는 천리의 원칙이요, 만민이 가야할 공통적인 공식이라면, 만약 민족이 알아주지 않으면 세계를 위해서 세계가 알 수 있는 길을 가는 날에는, 세계가 알게 될 때는 이 민족은 자동적으로 알 수밖에 없다는 이런 원칙에 의해서 피어린 핍박 도상에서 우리는 외국 선교를 전개해 나왔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일본을 개척하게 될 때는 지금부터 17년 전인 자유당 때였습니다. 한참 이화여대 사건으로 인하여 문 아무개라는 사람의 처지는 땅에 떨어져서 형편없던 때였지만, 나는 앞으로 일본의 정세가 어떻게 돌아갈 것을 알았고 아시아의 정세가 어떻게 돌아갈 것을 내 나름대로 느낀 바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치국가의 한 국민으로서는 당시에는 위법이 될는지 모르지만, 10년 내지 5년 후에는 반드시 대한민국이 우리를 필요로 할 때가 올 것을 알았기에, 내가 범죄인의 낙인이 찍히는 한이 있더라도 이 길을 단행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바로 1956년, 여러분이 알다시피 서대문 형무소에서 석방되어 충남 갑사 (甲寺)에 휴양가 있을 때 여기에 와 있는 최봉춘(崔奉春)이라는 젊은 청년을 불러서 '너는 일본을 위해서 밀항하는 것이다. 사나이가 정한 걸음은 죽음을 각오하고 가야 된다'고 훈계를 했던 것입니다.

첫번에는 일본에 입국하자마자 체포됐습니다. 1차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또 보냈습니다. 2차도 또 실패하고 돌아왔습니다. 내가 감옥에서 나와 보니 그 당시의 통일교회 형편은, 교회는 다 없어졌고 한칸의 집마저 전부 다 없어진 입장이었지만, 나는 나라를 위하고, 아시아를 위하여 빚을 얻어 가지고 3차의 출발을 시켰습니다. 그러던 일이 어제와 같습니다. 1958년의 일입니다. 일본의 통일교회는 그러한 형편에서 출발했습니다. 3차로 가서도 체포되어 오무라 수용소에 구금되었습니다.

자 그렇게 되었으니 그 장본인인 미스터 최도 큰일났거든요. 선생님과 철석같이 약속은 했는데, 이건 기반을 닦을 수 있는 신세가 아니라 영어 (囹圄)의 몸이 되어 버렸으니 누구한테 하소연하느냐 이거예요. 하소연할 데가 없으니, 간장을 퍼먹고 열이 나게 해서 꾀병을 부린 것입니다. 그래서 입원수속을 하고 3일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거기에서 탈출해 가지고 동경으로 가서 시작한 것이 지금의 일본 통일교회입니다.

지금에 와서는 일본의 자민당이 우리에게 자문을 요청하는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국가의 중요한 일이 있으면 구보끼(久保木)를 찾아 오는데, 그럴 수 있는 단계까지 끌어올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원칙은 천리(天理)가 세운 원칙이요. 이 원칙대로 밀고 나가면 망하지 않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원칙을 알았기 때문에 일본 통일교회의 젊은 청년남녀 신도들은 전국에 퍼져서 '국가를 위한 통일교회가 되어야 하겠다', '아시아를 위한 통일교회가 돼야 되겠다' 더 나아가서는 '세계를 위한 통일교회가 돼야 되겠다'고 해 가지고 활동을 하다 보니 오늘에 있어서는 일본 국내에서도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내가 공식석상에서 여러분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20년 통일교회 역사에 있어서 처음입니다. 내가 북미대륙을 누비면서 섭섭하게 생각했던 것은 '이 고아와 같은 불쌍한 한 사나이, 내 나라가 믿지 못하는 후배들을 뒤에 남겨 놓고 이국 국민 앞에 와서 믿음을 바라야 하는 처량한 자리에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자를 세워서 역사하셨기 때문에 나를 협조하시는 하나님은 아실 것'이라고 오로지 하나님을 붙들고 힘써 오다 보니 결과는 명실공히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초래하게 된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