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집: 역사의 결실체가 되라 1962년 10월 07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67 Search Speeches

인류의 고통과 "불어 최후의 날까지 싸워 오시" 하나님

보라구요. 아까 말한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자 이거예요. 하나님은 아까 말한 것과 같이 소망의 생활을 하고 싶었고, 소망의 생각을 하면서 살고 싶었고, 소망의 말씀을 전하면서 인류와 더불어서 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소망의 심정을 통하면서 살고 싶었던 하나님입니다. 오늘 이날 이때까지 그러해야 할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우리 앞에 찾아오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때,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소망의 하나님이 못 되었더라 이겁니다.

우리가 보니까 하나님의 마음 깊이에는 숨겨진 인격관이 있고, 숨겨진 소망의 이념적인 터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나타나는 모습은 그와 정반대의 입장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괴로웠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말은 명사뿐입니다. 실제 하나님이 지금까지 복귀역사를 경영해 나온 도상에 있어서는 꿈과 같은 명사입니다. 꿈과 같은 명사라구요. 인류가 슬픈 무대에 있어서 사망의 암초에 부딪칠 위기에 당도한 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께서는 , 그것을 바라보고 잘한다고 축사를 올릴 수 있는 하나님이 못 됩니다.

그런 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선봉에 서 가지고, 그 암초를 홀로 친히 먼저 부딪치면서 인류가 파손되어야 할 운명 가운데 설 때마다 하나님은 결사적인 투쟁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핸들을 돌려 가지고 새로운 해방의 곳으로 운전을 하시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피어린 역사노정을 엮어 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 하나를 운행하여 움직여 나온 예수도 그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볼 때 피어린 혈투전을 거쳐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모든 실정을 들춰 말할 시간은 없지만, 하나님은 불쌍한 하나님입니다.

오늘날 이런 소망의 아들딸들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은 어떠한 수고를 해 나왔느냐? 하나님은 편안한 자리에서 호령할 수 있는 역대의 영웅과 같은 자리에 못 나왔습니다.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원수가 있는 적진을 향하여 호령할 수 있는 , 기세도 늠름하고 신세가 당당한 모습으로도 못 나왔어요. 하나님은 찾아왔나니, 거리의 뒷골목에서 목메인 신세로서 시대시대마다 조롱과 저주의 암담한 터전을 떠나지 못하고, 허덕이는 역사적인 와중에서 신음소리를 거두지 못한 채로 지금까지 나왔다는 겁니다. 그 신음의 함성을 인류의 고통과 더불어서 역사적인 최후의 이날까지 같이 싸워 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될 때에 역사적인 칼자국이 있는 것을 알아야됩니다. 또, 그의 형상을 바라볼 때에 역사적인 화살자국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고, 그의 몸을 바라볼 때에 원수들의 형극의 자리가 있었던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선민의 역사는 피의 역사요, 이스라엘 선민의 역사는 사망의 골짜기 길을 가는 역사요, 이스라엘 선민의 역사는 죽음의 고비의 제단을 연이어 나온 역사입니다.

개인적으로 망하게 될 때는 가정에 있는 어떠한 대표자를 세워 이것을 상속받으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가정들이 망할 때는 민족적인 대표자를 세워서 이것을 상속받으라고 외쳤습니다. 또한, 민족이 망하게 될 때는 세계적인 사명을 계승하기 위하여 메시아가 이 땅에 와 오늘날 전세계적인 승리의 소망의 세계를 상속시키기 위하여 신음하고 있는 소리를 들어야 됩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아버지의 그 성상 위에 주름살이 잡혔다면 6천 년 동안 신음에 쌓인 주름살이 잡혔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에는 피어린 싸움터의 6천 년 자국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원수의 화살과 원수의 쇠사슬과 원수의 신음하던 그 처참하고 가련한 신세를 우리들은 알아야 된다구요. 이러한 신세가 아직까지 거두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그런 신세의 입장을 모면하고 피하기 위하여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자식을 찾아 나오는 충성의 도리를 다했다는 것입니다. 이 지조를 알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