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집: 뜻을 이루기 위한 책임을 다하자 1966년 10월 14일, 한국 광릉 (경기도 남양주군) Page #342 Search Speeches

끝까지 변하지 않" 통일의 무리가 되라

오늘은 선생님이 감옥에서 나온 날입니다. 선생님은 그때 감옥에 들어가던 날 팔에 쇠고랑을 차면서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유관순이나 안중근 의사는 민족이 사랑할 수 있는 딱지가 붙어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민족의 정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들을 높이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자리에서보다는 반대받고 핍박받는 죽음의 자리에 내몰아도 내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충효의 아들을 하나님은 그리워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자리에서도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이 효 중의 효요, 충 중의 충이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33년 생애보다 죽음직전의 3시간이 더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자극이 되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쇠고랑을 차고 감옥에 들어 갈 때 신중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평시에 나를 위로하는 자보다 내가 죽음길에 있을 때, 감옥에 있을 때 나타나 하나님의 지팡이가 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낸 사람들은 많았으나 지금까지 남은 사람은 적으니 지금에 와서 그들은 후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만은 남았습니다.

그 사람이 책임을 못 할 때 하나님은 그보다 더한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나는 외롭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식구들을 지방으로 내보내 고생시키는 것은 이 시대를 하나님께 기억시키기 위함이요, 하늘과 땅이 공인할 수 있는 자격을 빨리 갖추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7년노정에서 지쳐 돌아온 자에게는 선생님은 관심이 적습니다. 여기에 오면서 나뭇잎이 바람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을 때, '통일교회에도 봄절기가 있는 동시에 여름, 가을 절기가 있겠구나. 지금은 겨울 절기가 오는 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볼 때마다 욕하고 싶고, 나무라고 싶은 것은 그래도 지금은 가을이기 때문입니다. 곧 겨울 절기가 될 것입니다. 들려오는 것은 차가운 바람소리뿐인 모진 겨울철이 되면 완전한 생명력을 지니지 못한 잎은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 잎들이 떨어질 때 그 비참함은 어떠할 것인가? 최후에 남아질 나무는 어떠한 나무일 것이냐? 춘하추동 사철이 변할지라도 통일의 무리는 변할 줄 모르는 사철나무의 모습을 갖추어야 합니다.

봄이 되면 어느 나무든지 자기의 모습을 자랑할 수 있으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어도 남아질 수 있는 나무는 몇 안 됩니다. 통일의 무리는 사시 청청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태풍이 불어도 그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접을 붙이려면 가지에 붙이지 말고 줄기 중턱에 붙여야 합니다. 지금은 새벽입니다. 그런데 다들 졸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예수님의 열처녀의 비유를 배웁시다. 축복가정들이 지쳐 떨어지는 모습은 참지 못할 일입니다. 7년노정의 7년을 못 참아서야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통일되는 무리가 아닙니다. 통일시키는 무리입니다. 우리는 밀가루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누룩이 되어야 합니다. 통일은 평지에서 되는 것이 아니고 골짜기를 거쳐서 평지로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죽음의 골짜기에서 승리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승리로 이루어지는 통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