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집: 자연과 민족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1964년 06월 20일, 한국 동구릉 (경기도 구리) Page #103 Search Speeches

민족의 책임을 대신 감당할 수 있" 자

지금 화농처가 커져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환자와 같은 나라가 있는데 이것이 한국이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보통 하루에 세번 이상 '죽겠다'는 말을 한다. 이런 말은 잘못된 말이다. 말이라는 것은 마음에서부터 솟아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하나님으로부터 수술을 받아야만 한다.

섭리역사상 혁명의 터는 불쌍한 자리로부터 닦아 나왔다. 눈물을 흘려서 안 되면 땀을 흘리고, 땀을 흘려서 안되면 피를 흘리며 나왔다. 눈물, 땀, 피 이것이 혁명의 순서였던 것이다.

어떠한 혁명의 시대가 되면 상류 계급은 도피처를 찾는데 반하여 하류 계급은 자기들의 것을 세우려고 한다. 여기에서 무엇인가 세우려 하는 청년들이 있다면 그 나라는 흥하게 될 것이다.

개인이 패가망신한 경우에 있어서도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3대 이상이 걸린다. 그러니 한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수십년이 걸리게 되는 것이다.

고생을 시켜도 좀더 고생해야 되겠다는 사상의 소유자라야만 이 나라를 지도해 나갈 수 있다.

새로운 것을 일으켜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악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을 붙들고 몸부림치는 사람을 하나님은 더욱 사랑하신다. 애기 때부터 정성을 들여 길러 줄 수 있는 어버이들이 있어야 한다. 지금은 젊은 사람들을 위하는 충신이 필요하다.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이러한 사람들을 만들기 위해서 여러분을 이끌고 나왔다.

우리는 중 이상을 바라보고 나가되 중 이하를 알고 그들에게서 환영을 받아야 한다. 축복가정이 고생하는 것도 이러한 뜻에서 의의가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식이 불쌍해 보이면 삼천만의 자식 또한 불쌍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의 자식은 망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땅의 밑창을 보아 오셨기에 복귀역사가 있게 된 것이다. 천지의 운세는 올라가다가는 내려온다. 그리고는 다시 반동을 일으켜 더 높이 뛰어오른다.

전인류의 30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고기압은 저기압을 향하여 움직이기 마련인데 지금 우리 나라는 저기압의 자리에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사방에서 이 한국을 원조해야 된다. 한국은 도와야 할 곳이다. 지금은 이 나라를 위하여 다른 나라가 제물 이상의 생명을 바쳐야 할 때인데, 그러한 나라가 없으니 우리 민족이 이것을 해내야 되겠다.

우리는 이 민족에게 사상과 이념을 심어 주고 거기에 실천력까지 심어 주어야 한다. 부모가 자식을 길러내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해야 된다. 그래서 부모의 인정을 받고 형제의 공인을 받고 자녀들의 공인을 받아야 한다. 주는 데는 눈물과 피와 땀으로 주어야 한다.

이 민족 전체가 책임을 못 하면 소수의 무리라도 해야 한다. 이 소수의 무리가 책임을 해내면 이 민족 전체가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민족 전체가 자기들이 책임하지 못한 과거를 뉘우치게 될 때 그 소수의 무리를 추앙하게 될 것이다.

무엇이든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이 취해야 할 태도는 어떠한 것이냐? 여러분은 기관차가 되겠는가? 객차가 되겠는가? 물론 기관차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객차의 꽁무니에 붙어서 바퀴를 거꾸로 굴리면서 따라가고 있는 실정이다.

힘이 없으면 빈 바퀴라도 굴리며 이 고개를 넘어야 한다. 우리가 기관차를 끌고 가야 되는 것이다.

우리는 힘을 가진 통일의 무리가 되어야 한다. 움직여야 한다는 충동이 백 퍼센트 사무쳐 있어야 한다. 어디까지나 힘에 부딪치려는 동적인 충동이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젊은이들이 알아야 할 것은 내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어떠한 자세가 필요한가를 알아야 한다.

지금은 출세하지 않은 사람들이 편안한 때이다.

무엇이 되었든간에 동기부터 탈선해 가지고는 그 과정과 결과가 올바를 수 없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가 다 좋아야 한다. 아무리 잘 자란 풀포기라 하더라도 가을에 열매를 맺지 못했다면 그것은 열매를 맺은 가냘픈 풀포기보다 못한 것이다.

여기에 70세 된 노인이 걸어가고 있다면, 그는 어린애에서부터 70세가 된 지금까지 일정한 방향으로 인생행로를 걸어온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일정한 곳에 매여서 가야 한다. 하나님을 중심한 개인과 가정과 민족과 세계를 찾을 때까지 그렇게 가야만 한다. 선생님은 지금도 젊었을 때에 하나님을 대하던 그 순수한 마음, 그 자세로 가고 있다. 그것은 영원히 변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