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집: 해방과 우리의 책임 1970년 08월 1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30 Search Speeches

하나님은 무-을 하고 계시느냐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느냐? 세계를 품고 세계를 부활시키기 위해 수고하고 계십니다. 수고를 하시는 데는 세계만을 위해 수고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수고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각하는 것이 세계의 그 무엇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바라 시는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은 보다 강한 개인이요, 이런 무리가 있다면 이는 보다 강한 무리가 아닐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돌아가서 하나님이 계시느냐? 만약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이 세계가 아무리 해방되기를 고대하더라도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역사와 산물인 현실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역사과정에서 공(功)에 공(功)을 가해 가지고 이룬 것이 현세계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 하는 문제만 해결돼 가지고는 이 이상 발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종교란 무엇이냐? 참된 종교는 가공적인 이상을 소개하는 것보다도, 가공적인 인류애를 설명하는 것보다도, 본연의 문제에 들어가 가지고 인간들이 절대로 부정할 수 없도록 신에 대한 인식을 그 무엇보다도 강하게 심어줄 수 있는 종교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종교입니다. 그 이상 참된 종교는 없습니다.

그 가치는 오늘날 이 세계에서 가장 귀하다고 하는 것을 천개 만개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상의 어떤 위인이나 성현들을 통합해 가지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의 실존에 대한 자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으로부터 역사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각된 경지에서의 개인적인 인식관. 국가관, 세계관, 우주관 등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심정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보다 고차적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도 모르는 세계에서는 이말이 미친 사람들이나 하는 말로 들린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계신지 안계신지도 모르는데 하나님의 심정을 어떻게 알겠어요? 이 말 자체가 하나님이 계시고 안 계시고를 따지는 차원을 넘어선 것입니다.

심정문제라는 것은 생활권내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부모의 사랑이니, 부부의 사랑이니, 형제의 사랑이니 하는 것은 전부 생활권 내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생활권내에 전개되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정을 말한다면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실제로 하나님을 알고 있느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아느냐 하는 것입니다. 알아요, 몰라요? 안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틀림없이 안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손을 안 드는 것을 보니 전부 다 모르는군요. 그럼 모른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것도 없구만. 그러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러면 다들 뭐예요? 그러니 문제는 신에 대한 인식입니다. 하나님은 틀림없이 계십니다.

천국은 무엇이냐? 통일교회에서는 믿음의 천국을 말하지 않습니다. 시의(侍義)를 말합니다. 모심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모르고서 모실 수 있어요? 통일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아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르치면 누구나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통일교인들 가운데에도 신이 계신지 안 계신지,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도 잘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하루에 몇 번이나 자각합니까? 24시간 가운데 몇 번이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느낍니까? 모심으로 구원을 받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24시간 가운데 한두 시간 정도 모셔 가지고 되겠습니까? 공기보다도 절박하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입니다. 물보다도 절박하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입니다. 밥보다 더 귀한 것이 하나님이예요. 그런데 여러분에게 그렇게 느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