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집: 하늘이 원하는 책임자 1969년 11월 0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15 Search Speeches

참된 사람이 되려면

그러한 개인을 합한 것이 가정이 되었고, 가정을 합한 것이 사회와 국가가 되었고, 국가를 합한 것이 세계가 되었다 할진대, 그 세계의 정세라든가 세계가 가야 할 길은 어디에 귀결될 것이냐? 오늘날까지의 모든 역사적인 현상은 마음의 형상에 의해서 빚어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각자가 마음과 몸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의 모든 흐름과 역사도 수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것은 우리 마음과 몸이 방향을 달리하여 싸우고 있는 형상을 그려 놓은 것밖에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우리들은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게 볼 때 오늘날 진정한 사람이 없어 가지고는 진정한 책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책임을 진 사람, 즉 책임을 부여해 주신 하나님과 더불어 역사과정을 거쳐 목적한 바 결과에 도달한 사람이라야 진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참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개인의 양심을 중심삼고 일생에 책임을 다했다고 해서 참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참된 사람은 역사적 동기와 더불어 그 목적은 이루는 과정에서, 동기와 목적을 일치시킬 수 있는 입장에서 온 천지 앞에 `나는 책임을 다했노라!'고 하며 자신 있게 나타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참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참된 사람이 될 수 있는 시작과 과정과 결과가 있기 때문에 참된 사람이 되기 위한 그 목적을 이룬 자리에 서지 못한다면 참된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에 오늘 역사의 방향이 어디로 갈 것이냐? 또한 오늘 이 시대를 어디서부터 어떠한 기준을 중심삼아 수습해야 될 것이냐?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의 동기가 되시는 하나님과 그 인연을 따라서 태어난 우리가 그분의 목적과 우리의 양심의 방향이 일치되어서 최고의 결과에 이르게 될 때, 오늘날의 사회나 우리가 바라는 목적은 거기에서 그 해결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외에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개체를 두고 미루어 볼 때도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양심의 기원으로부터 양심의 과정을 거쳐 가지고 양심의 목적지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역사의 흐름에 부딪치는 형식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수많은 위인들이 이 땅 위에 왔다 갔고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이 땅위에서 수고하고 갔다 하더라도, 그 지향한 목표가 천륜의 방향과 일치됐느냐, 즉 우리 인류가 바라는 최고의 목적과 일치된 방향으로 갔느냐가 중요합니다. 얼마나 그와 같은 과정을 거쳐 갔느냐 하는 정도에 따라서 그 사람이 역사적인 인물이냐 아니냐 하는 평가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나'라는 한 개체는 아무리 작더라도 어떤 가정의 가장이면 그 가장의 한계권내에 머무는 개체가 아닙니다. 가정의 일원으로 태어났지만 아무개의 자식이라는 한계권내에 머무는 자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개체는 비록 한계권내에서 태어났지만 그 한계를 넘고, 역사적인 한계를 넘고, 세계사적인 한계를 넘어서 최후의 책임을 완수하는 목적의 세계로 뻗어나가고자 하는 양심의 방향을 여러분은 생활권내에서 잘 느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