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집: 하나님이 주관하시려는 복지를 찾아 세우자 1958년 12월 1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45 Search Speeches

심정의 혁명을 일으킬 수 있" 새말"의 필"성

오늘날 공산주의자들이 물질적인 혁명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물질적인 혁명,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양심의 혁명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면 양심의 혁명을 제시하며 나설 수 있는 하나의 주의는 어디 있을 것인가? 더 나아가서 심정적인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주의는 없겠는가. 이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주의가 나오기 전에는 이 세계는 통일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그러한 주의가 나온다면 그 주의는 물질을 기반으로 해야 하고, 말씀을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믿음을 잃어버렸고, 사랑을 잃어버렸고, 말씀을 잃어버렸고, 실체를 잃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것들을 복귀하기 위해서 인간들은 먼저 물질주의시대를 거쳤고, 이념과 사상의 시대를 지내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정적인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게 하는 것은 정(情)입니다. 사람들은 지정의(知情意)라고들 하지요. 그러나 정이 먼저라는 거예요. 이 인간 본연의 정을 폭발시켜 가지고 본연의 정의 세계에서 정적인 감흥으로 피조만물을 노래할 수 있는 위대한 예술가가 나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정적인 위대한 과학자와 종교가 나와야 하겠습니다.

오늘날까지 인간들은 무엇을 찾아 헤맸느뇨? 인간들은 주의도 만족해 하지 않았고 믿음도 만족해 하지 않았습니다. 참다운 말씀, 진리를 찾아 해맸다는 것입니다. 그 진리를 찾아서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내 마음이 새로운 이념을 중심하고 생명이 약동할 수 있는 봄동산을 맞이하자는 것입니다. 인간들로 하여금 생명이 약동하게 하는 진리라야 참다운 진리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기독교를 통하여 진리의 말씀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들에게 실체를 복귀하기 위한 말씀을 주셨으나, 그 말씀의 사명이 종결되지 못한 채 역사는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 말씀의 사명을 완결시키고 마음의 혁명과 정(情)의 혁명을 일으키려고 하셨는데, 인간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모시지 않은 연고로 이런 것들이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것들이 인류 앞에 다시 일으켜야 할 것으로 남아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있는 기독교 신자들 뿐만 아니라 그 외 수많은 종교인들도 그러한 참된 말씀을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타락인간들을 복귀할 수 있는 몸과 마음, 정, 모든 것을 통할 수 있는 진리의 말씀이 나온다 할진대 세계는 자연히 통일될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을 구원하는 복귀섭리가 필연적으로 있어야 하는데, 타락으로 인해 잃어버린 것들을 그대로 되찾는 내적 혁명이 있어야 합니다. 이 내적 혁명을 수행해야 할 사람들이 끝날의 기독교인들이요, 종교인들이요, 양심가들입니다. 사실 양심가들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큰 기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아무리 고생을 했더라도 말세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성경 66권의 말씀은 고마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는 인간의 본연의 마음을 불러 일으키고 본연의 심정을 유발시키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두 가지 내용을 갖춘 새로운 말씀을 우리는 찾아야 합니다.

만일 이러한 말씀을 찾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6천년 섭리역사는 실패로 돌아갑니다. 이러한 현상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의 복귀섭리가 실패로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문화와 사상이 규합되어 나오는 역사의 추세를 감안해 볼 때, 이제 마지막 날에 꼭 필요한 것은, 본연의 마음을 움직이고 본연의 심정을 움직여 낼 수 있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시고 싶은 말씀을 다 하시지 못하셨습니다. 또, 인간들을 사랑하고 싶으셨지만 다 사랑하시지 못하셨습니다. 이것이 인류에게는 큰 슬픔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도 슬픈 일이었습니다.

복귀노정에 있는 인간들에게 몸과 마음의 세계, 정(情)의 세계, 그리고 하나님의 심정을 소개하는 말씀을 해 주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슬픔이요, 예수님의 슬픔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