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집: 나의 뜻과 신념 1969년 02월 0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22 Search Speeches

잊어 본 적이 -" 하나님의 사'

선생님이 어느 곳에 가든지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그런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 사정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동정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또 여러분이 선생님을 대하듯이 가는 곳곳마다 그렇게 대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가 명절날 같은 때에 밤을 새워 가면서 준비한 그 상을, 혹은 남편을 위해서 준비한 그 상을 선생님 방에 갖다주지 않고서는 안방에 들어 가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냥 안방에 들어가게 되면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진다는 것입니다. 자기들도 왜 그런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낙네들의 정성들인 그 음식까지도 선생님을 먹이기 위해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런 역사가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꿈에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천번 만번 이 몸이 으스러지고 뼈가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나온 역사과정에서 하나님은 선생님이 어떠한 자리에 가 있든지 함께해 주셨고, 선생님을 위해서 그렇게도 수고를 하셨다는 것은 선생님 자신에 있어서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 이랬다 저랬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일본에 갈 때는 보통 부산에서 배를 타고 가는데,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기차로 8시간 걸립니다. 나는 그때 기차를 타면서부터 오버를 뒤집어 쓰고 통곡을 했습니다. 눈물이 끊이지 않아서 눈이 붓고 코와 입술이 붓도록 울었던 것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오늘 새벽에도 그런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 눈물, 하늘을 사랑하고 싶어했던 그 사연, 이 민족에게 심어 주고 싶었던 젊은 시절의 그 하소연이 이 민족 앞에 기필코 남아질 것을 선생님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이 민족 앞에 남아지지 않으면 통일의 젊은 가슴 가슴에, 통일을 원하는 사나이의 가슴 가슴에 남아 달라고 선생님이 부탁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선생님에 대하여 비판하는 사람은 그 장래가 편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이러한 통일교회를 비판하고 선생님이 가는 길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논란하는 사람들은 큰 회개를 해야 될 것입니다.

제2차 7년노정까지 선생님이 걸어 나온 길에는 곡절이 많았습니다. 눈물의 쌍곡선을 그으며 그 길을 개척해 나와야 했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사정할 수 없는 역사적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여러분은 무턱대고 평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 배후에 선생님이 흘린 한의 눈물이 얼마나 엄청났는가 하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선생님만이 압니다. 하나님만이 압니다. 하나님과 선생님만이 알 수 있는 그 사연이 한국 삼천리 반도 위에 엮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모를 지라도 선생님은 역사시대에 길이길이 남아질, 그 무엇보다도 귀한 이 사연을 죽어가면서도 품고 가야 할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사연을 펼쳐서 만민 앞에 통고하고, 승리의 깃발을 꽂고 나서 그 승리의 보좌에 아버님을 모셔 넣고 찬양과 경배를 드리지 못할까봐 염려하여, 한을 품고 사는 사나이가 문 아무개인 것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기 바랍니다.

이 민족을 위해 눈물을 흘린 것으로 말한다면 선생님은 그 어느 애국자보다 더 많이 흘렸습니다. 선생님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던 1941년 4월 1일 새벽 2시에 부산 부두에서 한국을 바라보며 기도하던 것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비록 떠나지만 너를 더욱더 사랑하고, 너를 위하여 더 많은 눈물을 흘려주마'고 약속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