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집: 하나님의 사랑과 더불어 사는 자가 되자 1960년 05월 0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85 Search Speeches

하나님을 위로해 "릴 수 있" 아""

이제 우리는 알았습니다. 구원섭리가 웬말입니까? 내게 구원이라는 말이 웬말입니까? 구원이라는 말이 필요 없어야 할 것인데, 이 구원이라는 말이 있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구원이란 말은 슬픈 명사입니다. 내게 구주란 말이 웬말입니까? 구주 없던 에덴동산의 아담 해와는 어디 갔습니까? 본연의 아담 해와도 구주가 필요했습니까? 예수가 필요했느냔 말이예요. 타락했기 때문에 구주가 필요한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기도니 종교니 도덕이니 수양이니 무슨 세계관이니 하는 것 다 필요없습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아담주의가 세계주의요 하나님주의입니다.

타락하여 다 망쳐 놓은 것을 꿰매고 또 꿰매어서 하늘 앞에 내 세우려는 것이 복귀노정입니다. 그런데도 뻔뻔스럽게 '나는 이만큼 했으면 됐지'하고 배통 내미는 사람들은 한대 갈겨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범죄자 중의 범죄자입니다. 하늘 앞에 배반자로서 용서받을 수 없는 자리에 있으면서 자랑을 하고 다녀요? 심정의 세계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말할 수 없이 기가 막힙니다. 눈물밖에 나올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죽으면 그 부인은 한없이 울지 않습니까? 우는 그 순간에는 옛날 어렸을 적의 일에서부터 모든 것이 생각납니다. 사랑의 감정을 통하여 북받쳐 나오는 서러움은 어렸을 적에 어머니에게 욕먹던 생각까지 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남편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많이 울어본 적이 있는 여인이 먼저 회개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남편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통곡하는 그 자리는 하늘편에 가까운 자리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사랑하는 아들딸을 잃어버린 후 타락한 인간들을 붙들고 6천년 동안 통곡하며 나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6천년 동안을. '너희들은 타락하였지만 나는 영광받겠다.'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우리와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아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하나밖에 없는 딸을 잃어버리고 6천년 동안 허덕이며 찾아나오신 걸음이 지금까지의 하나님의 구원섭리역사입니다.

이 아들딸이 찾아지기 전에는 천지에 만물이 꽉 들어찬다 해도 하나님은 자랑할 수 없습니다. 왜? 만물은 그 아들딸을 위해 지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지어 주신 만물을 수습해야 되겠고, 우리와 더불어 살아야 할 세계인류를 끌고 가야 되겠고, 우리를 지도하시는 하늘을 모셔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하나님인 것을 알면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는 순간에 가슴 아파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하면 몇 십년을 통곡해도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도할 때 그런 것을 느껴야 됩니다. 아버지의 심정은 이러했는데 아담 해와가 그 심정을 모르고 타락할 때 마음 아파하시던 심정을 느껴야 하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1600년만에 노아를 세워 120년 동안 수고하게 하셨으나, 그의 아들 함이 타락한 입장에 서는 것을 바라보셔야 했던 그 심정을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으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시대를 지나 지금까지의 아버지의 심정을 알고 체휼하는 자리에 들어가면 여러분이 형편없음을 느낄 것입니다. 자기 존재의 가치를 도외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백 번 죽어도 당연하고 천 번 망해도 당연합니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하늘은 '너를 대신하여 망할 자리에 들어가 주고 죽을 자리에 들어가 주겠다'고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아버지를 닮아야 합니다.

예수는 그런 자리에서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피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 자리는 아버지와 아들이 체면을 생각지 않고 붙들고 눈물짓는 자리입니다. 찾아오시던 아버지와 찾아가던 아들이 상봉하여 서로를 염려하면서 붙들고 우는 자리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가까운 자리가 어떤 자리인 줄 알고 있습니까? 회개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무슨 죄 무슨 죄를 지었으니 용서해 달라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심정을 몰랐던 것을 회개하면 다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의 돈을 다 써버리고, 별의별 짓을 다하고 다니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자기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심정을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이상 더 큰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이까짓 것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아버지의 심정에 상처를 입힌 이 죄를 어떻게 용서받겠습니까?' 하고 눈물짓는 자식이 있다면, 그 아버지는 '오냐 오냐' 하며 용서해 줄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부모도 그렇듯이 하나님도 그러하십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나가서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데, 회개하오니 용서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 보다도 '천륜의 원칙을 파괴하고 하늘과 인간의 인연을 유린하고 인간과 만물의 인연을 파괴한 죄, 심정문제에서 지은 죄를 용납해 주시옵소서' 해야 됩니다. 그렇게 회개함으로써 용납받고 승리하여 아버지의 인정을 받는다 할진대, 만사는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하늘은 그런 회개자를 찾아 나오십니다. 알아보니까 그래요, 알아보니 그렇더란 말입니다.

심정을 통한 사람에게는 세상의 모든 물건이 자기 것도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심정을 통한 사람은 세상의 어떤 물건을 가져오고 가져가도 아버지에게는 죄가 되지 않습니다. 앞으로 천국 세계에서는 이웃집에 가서 말없이 먹고 싶은 것 좀 먹었다고 해서 그것이 죄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심정적으로 연결이 돼 있기 때문입니다.

심정을 유린한 죄 이상 큰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헤아려 보면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심정을 유린한 죄인이요, 만물의 심정을 거부한 죄인이요, 심정의 세계를 이루지 못하게 한 방해꾼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여러분이 알고 심정을 걸어 놓고 회개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슬픔의 자리를 벗어나서 '하나님, 이제는 그만 슬퍼하시고 그만 우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슬픈 자리에 계신 하나님을 기쁜 자리로 옮겨드려야 합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서로 웃고 기뻐하며 사는 곳이 지상천국이요, 그런 아들딸이 사는 곳이 우리들의 본향이요,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가 살던 본연의 세계입니다.

그런 세계에 들어가려면 천주의 이념과 심정의 인연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의 창조 이상의 심정과 타락 직후의 심정과 복귀의 심정과 소망의 심정을 알고, 하나님과 더불어 살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심정과 더불어 싸우고, 그 심정과 더불어 회개하고, 그 심정과 더불어 죽는 자가 있다 할진대, 그는 죽어도 산 자요 잃어버려도 얻은 자입니다. 나중에는 이 세계 전부가 그의 품에 안겨 그의 것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주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