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집: 우리의 책임 1970년 08월 29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48 Search Speeches

원수도 친구로 사'해 주자

선생님은 모든 일이 구속당하더라도 그 구속당하는 기준에서 모든 것을 찾을 수 있었고, 나아가 하나님 앞에 새로운 출발의 동기와 새로운 삶의 보람을 찾아 나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출발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별의별 중노동을 하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나는 안 꺾인다, 다른 사람은 다 죽더라도 나는 안 죽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나왔던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살고자 하는 데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라 죽고자 하는 데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통일교회의 뜻을 알고 나서 죽음을 각오했습니까? 자유당 시대의 특무대장 김창룡 살해 사건의 주모자인 허대령이 사형을 당할 때에, 이번 일을 계획하고 지시한 자로서 한이 없느냐고 물으니 그는 아무런 한이 없다고 하면서 사내답게 죽어갔습니다. 그런 살해 사건이나 총살 사건이 생기면 그것을 자신과 비교해 보라는 것입니다. 비교해 보면서 나는 과연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원수의 모함으로 국가의 대반역자로 몰리어 죽을 수도 있을 것이요, 동지의 모해나 친구의 모해, 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모해 등 여러가지로 인해 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을 때에는 세상을 위하는 마음으로 죽어야 합니다. 원수를 맺지 말고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기왕 죽을 바에는 원수를 맺지 말고 무엇인가를 심어 놓고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원수가 아닌 친구로서 사랑하면서 죽자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원수를 위하여 기도한 것은 위대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벨이 되었습니까? 「못 되었습니다」 아벨이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됩니다. 또 선생님 자신이 아벨이 됐느냐 하는 문제도 하나님과 일체가 되었느냐를 놓고 봐야 합니다. 그 일체라는 것은 개인적으로 일체가 되어야 하고, 국가적으로 일체가 되어야 하고, 세계적으로 일체가 되어야 하고, 천주적으로 일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자기가 죽는 자리에서의 해결 기점을 결심하고 나서 생애 노정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도 그렇습니다. 또 형무소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조금도 변명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휴양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