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집: 신앙자의 각오 1969년 11월 3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93 Search Speeches

우리가 믿고 "라" 것

아침에 우리가 직장이나 책임 부서를 향할 때에는 반드시 비는 마음,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하루의 생활에 임하게 됩니다. 하루가 그렇거늘, 한달이 그럴 것이고, 일년이 그럴 것이고, 우리의 생애노정이 또한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바라는 마음, 원하는 마음을 갖고 생활을 하며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 개인이 그렇거늘 한 나라와 세계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개인이 연결되어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 세계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개인생활이 그 무엇을 원하고 그 무엇을 바라는 마음을 갖고 나가는 것을 보아서, 한 나라면 나라도 그러할 것이요, 세계면 세계도 그러할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만이 아니라 이 천지를 창조한 절대자가 있다면 그 절대자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 인간뿐만 아니라 천상세계에 계시는 하나님도 역시 무엇을 바라고 원하는 마음을 지니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현시점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인간이나 하나님이 바라고 고대하는 그 자체는 무엇인가 하면, 무엇을 추구하느냐 하면, 현실보다 더 낫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 시간까지보다도 차후에 찾아오는 그 시간이 더 낫기를 바라고, 지금의 입장보다도 앞으로의 입장이 더 낫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신앙이라는 문제가 등장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바라는 것은 현실적인 것이 아닙니다. 금후의 문제입니다. 소원하는 자체는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시간이라는 과정을 거친 후에 나와 부딪칠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원하는, 혹은 믿고 바라는 모든 마음은 현실의 자기 입장보다도 더 나을 수 있고, 현재의 자기 입장에 무엇인가 플러스시킬 수 있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현재에 열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열 이상의 가치의 것, 열 이상의 위치를 바란다고 한다면 내가 추구하는 그곳에는 열 이상의 힘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열의 입장에서 백을 바란다면 90을 어떻게 성취하느냐가 문제입니다. 10의 입장인 나에게 90이라는 힘을 플러스시키지 않고는 바라는 소원을 성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생사문제나 행.불행의 문제를 자유로이 가려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비참하게 최후를 마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그 운명길이라는 것은 자기 스스로 해결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행복이라든가 불행이라든가 혹은 생사 등의 전체적인 문제는 물론 인간을 중심삼고 벌어지고 있지만 인간 자체가 그 모든 문제의 해결 요인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사망선이나 불행의 고비를 어떻게 타개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그 불행이라는 것은 자기가 서 있는 현시점보다도 낮은 위치, 혹은 열이라는 힘을 지니고 있다면 그 열이라는 힘을 지니고 있는 현재의 입장보다 더 낮은 위치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피해가기 위해서는 열이라는 힘에 플러스될 수 있는 요인을 어디서 보급받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우리 생활 가운데에서 요구되는 절대적 요건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