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집: 개척자의 길 1970년 04월 1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50 Search Speeches

하나님이 내세우시" 개척자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런 말세를 맞이한 신앙행로에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새로운 길을 향해 저편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활태도가 달라져야 됩니다. `나는 새로운 개척자로서 개척의 자리에 들어가 성공하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은 어려우면 도와 달라고 아우성쳤지만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승공연합을 창설할 때, 기관에 있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왜 저렇게 미욱할까? 슬쩍슬쩍해 가지고 다 앞에 내세우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수고하신 기반 위에 내가 가야 할 개척노정이기 때문에 내가 책임을 지고 하겠다는 거예요. 있는 정성을 다 투입하겠다는 것입니다. 밤이든 낮이든….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정력을 다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제1차 계획에서 실패하면 제2차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배가의 노력을 할 것입니다. 제2차 계획도 실패하면 또다시 제3차 계획을 세워서 하는 것입니다. 3배의 가중한 노력을 할 것입니다. 실패를 거듭하면 할수록 그 실패의 요인으로 말미암아 내가 낙오자가 되고 패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여기서 더 가중된 결의와 각오를 하고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지상에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상에 천국이 오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 천국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새로운 개척자가 되어 이 땅을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도 이 땅에 개척자를 내세우려 하시는데 어떤 개척자를 세우느냐? 하나님 앞에 짐을 지우는 그런 자는 쓸데없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짐은 물론 하나님의 짐까지 맡아 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걸어 나온 것은 개인 구원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 개인을 위해서였지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전부가 개인의 테두리 안에서 시시하게 편협한 인생관을 가지고 꺼떡꺼떡하고, 뭐가 어떻고 저떻고…. 메스꺼운 패들이 많다는 거예요.

여러분에게 얘기했는 지 모르지만, 내가 감옥에 들어가서 매를 맞아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자리에서도 나를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이것보다 몇백 배의 수난을 당하며 나오신 하나님이시기에 그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할 수 없었습니다. 미래의 수난길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현재 고난을 당한다고 해서 얼굴을 들고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응당 맞아야지요! 응당 몰려야지요! 응당 죽어야지요!'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자기의 십자가는 자기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하나님께 맡기겠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동정을 안 해주십니다.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신앙자들은 자기의 십자가를 하나님께 맡기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남겨 드릴 것인가 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뼈까지 깎아 먹으려고 하는 기생충과 같은 신앙자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천국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집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모 앞에 불효하는 자식이라 하여도 자기 부모가 죽도록 고생한 것을 알면 돌아서서 통곡을 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그러한 자리에 서게 될 때 효자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아직까지 그러한 자리에 서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시대에 없었던 그러한 효자의 모습, 하나님이 동정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 하나님께서 소망을 가지고 `내가 너에게 바랄 수밖에 없구나' 할 수 있는 한때를 내가 언제 마련할 것이냐? 지금까지의 종교 형태를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형태를 모색해야 돼요.

여기에서 통일교회가 보는 관은 다르다는 거예요. 내가 기도해 가지고 내 자신이 복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복을 돌려드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어려움을 내가 책임지기 위해서 기도하자는 겁니다. 또한 수난을 당하더라도 그 수난이 내게 과중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적어 하나님 앞에 부끄럽다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당신은 저를 염려하기 보다도 먼저 나라를 위해 짊어진 십자가를 벗어야 할 입장이 아닙니까? 저는 죽더라도, 이 나라, 이 민족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세계를 위해 짊어진 십자가를 벗어야 될 당신의 입장이 아니겠습니까?' 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입장에 계시기 때문에 자기의 자식, 일족, 종족을 고생의 자리, 굶주리는 자리, 헐벗는 자리로 몰아내더라도. 그러한 자리에 서서 나라를 위하는 사람이 충신이 아니겠느냐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