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집: 사랑을 이한 한(恨) 1970년 10월 0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81 Search Speeches

참된 종교의 길

인간의 타락은 피살과 핏줄을 통해서 연결되어 왔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려면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경계선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돌감람나무가 된 자신을 참감람나무에 접붙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 생명을 부정하는 한때를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도달하지 않으면 접붙일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을 부정하는 과정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 부정의 극한점은 어떤 자리냐? 생사지경을 넘어설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를 거치지 않고서는 복귀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참된 종교는 부정하는 자리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종교의 길은 현실사회와는 반대되는 노정을 가야 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사랑을 이(□)한 한(恨)이란 무엇이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듯이 사랑이라는 것이 없어 가지고는 행복도 없습니다. 또한 자유도 사랑이 있는 행복한 자리에서 찾은 자유라야만 만민이 공히 필요로 하는 자유이지 사랑의 기틀을 떠난 자리에서 찾은 자유는 참된 본연의 자유가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흔히 자유를 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니, 자유사상이니 하는 말을 하지만 그 근본적인 터전이 어떠한 국가적인 외적 사상이나 관념, 혹은 어떠한 물질적인 욕구를 중심삼은 것이거나 어떠한 체제를 중심삼고 부르짖는 것이라면 그런 자유는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조건을 우리의 심정을 통한 행복의 요건이라고 제시할 수는 없는 것이요, 설사 행복의 요건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입체적인 행복의 요건으로는 절대 제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안팎을 갖춘 입체적인 행복의 요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사랑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첫째 지식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 첫째 계명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더 나아가 행복을 체득할 수 있는 자리를 가졌느냐 할 때, '사랑하라'고 제시한 그 조건을 통과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즉 '사랑했다' 하는 결과에 못 나갔기 때문에 인간은 아직까지 행복을 찾아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