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1집: 당차게 활동하라 1991년 10월 23일, 한국 한남동 공관 Page #125 Search Speeches

생명을 걸고 투쟁한 선생님의 일생

그 다음엔 전번 교구장 일어서요. 요전의 교구장, 몇명이예요? 번호 해 봐. 「하나! 둘! 셋! 넷!……열넷!」 그 다음엔 맨 처음에 연합 회장 여럿 있었지요? 그 사람들 일어서 봐. 번호 해 봐. 「하나! 둘! 셋!……열셋!」 전부 다 몇 명인가? 「열여섯 명인데 세 명이 아직 미도착입니다.」 그래? 아직 열세 명밖에 안 왔구만. 어디 여기 서울 가까이 있나? 「지방에 있습니다.」

지방에서 오는 다른 패거리들은 누가 안 왔어? 「정선호씨가 아직 경남에서 못 오고 있고….」 그러니까 몇 명인가, 전부 다? 「정예부대도 있습니다.」 그래, 정예부대. 정예부대가 아니고 기동대지. 특공대 몇 사람이야? 아까 앉았던 사람은 그만두고 몇 사람 있어? 세 사람인가? 특공대 몇 사람인가? 요것밖에 없어? 「번호 해요! (어머님)」 「하나! 둘! 셋! 넷! 다섯!……열!」 아까 열다섯 명인가 됐는데 요것밖에 없어? 「중복됐습니다. 열다섯 명에서 한 명 더 와 가지고 열여섯 명 됐습니다.」 자, 앉으라구.

여기 특공대들 가운데서 교구장 안 해 본 사람 손 들어 봐. 어떻게 교구장 안 해 봤나? 교회에 지금까지 쭉 시무했나? 「예.」 성적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구만. 교회장이면 성적이 좋잖아? 이젠 많이 나아졌네, 여건이. 그래, 열심히 뜻을 위해서는 그것 다…. 옛날에는 거꾸로도 그렇게 돌아갔지. 이만큼 돌아갔다가 바로 되지. (웃으심)

여편네는 지금 어디 가 있나? 「전남에 있습니다.」 전남? 「예.」 이번에 고향 복귀한다고 해서 전부 다 교회 버리고 맨손 들고 나섰을 때 처량했지? 「처량하더라도 뜻이면 가야지요. 출발할 때의 각오 그대로였습니다.」

내가 삼팔선을 넘을 때 생각하면 되지! 그때가 성진이가 태어난 지 며칠 만인가? 한 40일인가 된 때였어요. 성진이 어머니는 스물세 살 되는 나이였고. 그래, 친척도 없지, 쌀 떨어져 가지고 쌀 가지러 가던 도중이었거든. 그런 가운데서 삼팔선 넘어간 거라구요. 명령엔 그렇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돌아와 가지고는 절대 좋은 게 없어요. 여러분은 그거 모른다구요. 몇 십 배, 몇 백 배 탕감하는 것입니다. 나라까지 걸려들어 간다구요.

여러분들 지금 이것이 놀음인 줄 알아요? 선생님의 일생은 생명을 걸고 투쟁한 역사입니다. 말 한마디도 하기 어려운 때라고, 지금 때는.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40년 노정을 거칠 때에 거기 한 녀석이 선동했으면 60만이 어디로 가느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벌써 광야에 들어갈 때 하나님은 애급 사람은…. 애급 사람 가운데 애급을 싫어하는 사람 없었겠나? 어떻게 생각해요? 또 4백 년 동안에 무엇은 없었겠나? 애급 사람 사위가 없었겠나, 애급 사람 첩이 없었겠나?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따라 나오면 불편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출발했다가 전멸당하면 안되겠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만 나오게 한 거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