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집: 식구가 가야 할 본연의 길 1972년 08월 01일, 한국 남산성지 Page #19 Search Speeches

효자의 촉매가 되어야할 우리

이렇게 부모에게 불효를 한 아들의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이 인류입니다. 불행을 초래한 장본인이 우리 인간인 것입니다. 하늘 앞에 말할 수 없는 불효를 했기 때문에, 불효한 자가 하늘 앞에 당당히 서기 위해서는 효자될 수 있는 자리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불행하였던 그것을, 불효하였던 모든 것을, 본심에 돌아가 가지고 불효한 그 과오를 바라보는 것보다도 부모가 슬퍼하였던 그 마음을 보고 그 이상 슬퍼할 수 있는 아들이 되지 않고는 불행하였던, 불효하였던 자식이 불행으로 말미암아, 불효로 말미암아 저끄러진 어버이의 마음을 풀길이 없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게 될 때, 오늘날 불효의 길로 출발하였고 불행의 씨를 뿌리고 난 불효자식된 우리들이 하늘 부모 앞에 이제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내 안식을 추구하며 내가 안식하는 그 길을 가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자신이 불행하게 했고, 불효자식이 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얼마나 타격받았겠으며 하늘이 얼마나 상심이 되었겠느냐? 그러니 그 마음을 어떻게 내가 위로해 드리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늘은 우리 인간이 제한된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을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는 자격자라고 믿지 않습니다. 불쌍한 자라고 동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변명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변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저 그 성상을 바라보게 될 때, 불효자식으로 낙인이 찍혀졌지만, 부모를 대할 때에 천만 사지백체를 그 앞에 엎드려 눈물을 뿌리면서, 부모 앞에 저끄러진 죄상을 직고(直告)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지 않느냐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부모의 심정에 상처를 입힌 그 불효의 역사를 이어받은 우리들이, 불효의 역사로 말미암아 역사시대를 수난길에서 역경을 극복하며 나온 하늘 앞에 무슨 변명을 할 수 있으며, 어떻게 자기 자신을 세워 가지고 내가 이렇게 하늘을 위로할 수 있다고 자신을 가질 수 있느냐?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역사를 알면 알수록 우리는 눈물로써 하늘의 한을 덮어 드려야 되겠고, 아버지가 비참하였던 이상의 비참한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그런 장면이 있게 될 때, 여기에 하늘의 새로운 동정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나 뻔뻔하게 자기 자신에 대해 변명을 하고, 자기의 주관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거기에는 동정이나 새로운 인연이라고 하는 문제는 생겨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천 번 만 번 죽어 마땅한 자신이요, 당신 앞에 나타나는 것이 고역이요,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당신의 성상을 바라보는 것이 죽기보다도 더 비참하다고, 울분을 느끼면서 나는 죽더라도 당신의 상처난 그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라도 남길 수 있으면 그 이상의 소원이 없다고, 절망자와 마찬가지의 입장, 세상의 그 누구를 바라볼 수 없는 소망이 없는 자와 마찬가지의 입장에 서게 될 때, 새로운 의미에 있어서 하늘의 동정을 자아낼 수 있는 것이요, 그 길에서만이 새로운 역사의 출발이 인연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자기를 생각하고, 자기 위신이나 체면, 자기의 지내온 경력, 현재 처해 있는 무슨 위치, 이런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하늘의 효자가 되기를 맹세하고 나섰다고 자처합니다. 우리는 냉정하게 다시 한 번 분석 비판해야 되겠습니다. 내 손이 하늘 앞에 얼마나 효자의 손으로서 하늘이 그리워하는 손이 되었으며 내 얼굴이 얼마나 하늘 앞에 효자의 모습으로서 하늘이 그리워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느냐?

내 일신이 얼마나 효자의 촉매가 되어 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어떠한 역경에 있을지라도 그 역경을 극복하면서, 효자의 가는 길을 개척해 주기 위하여 노력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나타낼 수 있게 만들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거기에는 우리가 자신을 못 갖는 것입니다.

이 손과 이 모습과 지난날의 모든 역사라는 것은 불효, 불효투성이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못을 박던 우리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불평을 하였고, 그러면서도 투정을 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오늘 8월 초하루를 맞는 이 자리에 선 여러분들, 우리에게는 하늘을 위해서 효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충의 길을 가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앞서 나 자신이 어떻게 하늘 앞에 동정의 제물이 되어 그 자리를 지켜 내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귀하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