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집: 두 세계를 대하고 있는 나 1959년 09월 2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38 Search Speeches

천국과 지옥행은 어""-서 결정되"가

그렇다면 천국과 지옥행은 어디에서 결정되어지느냐? 나에게서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몸의 오관을 통하여 느껴지는 조건들 속에서 양심의 가책을 받는 생활을 하는 자는 지옥에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마음이 즐길 수 있는 생활을 하는 사람은 천국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물욕과 악심을 버리고 양심을 중심삼고 천륜을 바라보는 것이 지당한 일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라는 것은 기쁨의 한날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슬픔의 한날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슬픔으로 시작하였으니 슬픔으로 끝나고, 고통으로 시작하였으니 고통으로 끝나고, 절망으로 시작하였으니 절망으로 끝나는 때가 옵니다. 곡식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천심을 배반한 우리의 선조입니다. 양심의 도리와 천심의 법도를 어기고 떨어져 내려와서 무한히 슬퍼하였습니다. 이렇게 내려왔으니 이 세계는 마음이 즐길 수 있는 내용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의 생활을 하려면 이것을 전부 다 쳐야 합니다. 이와 같은 싸움이 여러분 자신에게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슨 행동이든지 그 행동이 반드시 선이냐 악이냐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내가 움직이는 이 하나의 손길, 보는 것, 듣는 것, 냄새맡는 것등 우리의 모든 감각을 통하여 들어오는 전부가 선을 위주하였느냐 악을 위주하였느냐 하는 그 가치를 결정짓는 걸음걸이를 걷고 있는 것이 오늘의 내 생활인 것입니다. 도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도 자신의 전체 오관의 감정세계까지 이런 관념, 이런 선악의 기준이 철저하게 서 있지 않는 한, 이것을 식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그런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싸움. 악한 것이 일어나서 선한 것을 먼저 치지만 악한 것은 오래 못갑니다. 악한 것은 오래 못가고 선한 것은 오래 간다는 것입니다. 오랜 역사과정에서 이것이 개인에서 가정으로 민족으로 국가로 세계로 천주로 점점 확대되어 세계적인 이념시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세계주의시대가 와도 개인은 개인입니다. 그렇지만 이 사조의 흐름은 범위를 넓히면서 나오는 것입니다.

옛날에 양심적으로 산 사람이나 오늘날에 양심적으로 산 사람이나 입장은 마찬가지로되 관계되어 있는 범위는 넓어져 나옵니다. 옛날에는 개인을 위주하는 생활형태에서 만족하였으나, 그래야 하느냐 하면 그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가정을 위주해야 하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사회를 위주하느냐 하면 사회도 아닙니다. 국가를 위주하여야 하느냐 하면 국가도 아닙니다. 세계를 위주하여야 하느냐 하면 세계도 아닙니다. 하늘 땅을 위주하는 생활형태라야 합니다.

역사의 조류와 형태와 그 범위는 넓어져서 흘러와도 마음의 기준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 마음의 기준을 중심삼고 천륜의 방향과 딱 맞추어 나가면 이 역사의 모든 것은 천륜이 지배하고 있는 연고로 마음이 지향해야 할 목표와 방향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적으로 살아라, 양심적으로 살면 복 받는다'라고 했습니다. 심판의 한날이 우리 앞에 막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복 받는 것은 과할 것입니다. 당장은 복 받는 것 같아도 그때에 가선 맞게 되니, 도리어 복이 못 되는 것입니다. 땅 위에서 복 받는 것이 아닙니다. 복은 한때가 올 때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남아진 자에게 축복의 기대가 벌어지기 때문에 양심적으로 살면 복받는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