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8집: 세계평화를 지키는 기수 1982년 05월 06일, 한국 한남동공관 Page #90 Search Speeches

옳은 것을 옳다고 할 줄 알아야 승리해

그다음에 우리 합동결혼식이 1968년도에 있었어요. 1967년도에서 몇 개월, 한 반 년 더 지나 가지고 한 번 축하를 하는 데 불렀어요. 그래도 좋아해요. 그랜드 호텔에 모셔 놓고, 그 이튿날 합동결혼식을 하는데 그 아들까지 데려왔더구만요, 둘째 아들. 그때 둘째 아들이 합동결혼식하는 것 보니 거창하거든요. 그때까지도 독신주의였다구요. 그런데 자기도 합동결혼식에 참석시켜 달라고 나보고 요청했습니다. 그런 판국이니 기분이 좋았지요.

그래 가지고 합동결혼식이 끝나고 피로연회석에서 말이예요, 신랑 각시들을 모아 놓고 그랜드 호텔에서 축하하는 좌석에 데려다 놓고 그 자리에서 들이 깐 거예요. '이놈의 영감, 모터장에 갔을 때에 영감이 기분 좋아서 그랬지만 내가 그때 사사까와라는 영감을 필요로 해서 갔지, 뭐 배짜박지를 위해서 간 것이냐? 당신이 여기에 온 것이 축사를 위해서 온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랬거든요. 훈계를 한 거지요. '당신은 일본을 대표해서 왔다. 일본 민족이 앞으로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 내가 오라고 그랬지, 축사하기 위해서 오라고 한 것 아니다' 하고 들이깠어요. 그거 실례지요.

그랬더니 이 영감이 얼마나 분했던지 그날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우리 애들이 시중을 하는데, 그저 들어갔다 나왔다 들어갔다 나왔다 하더라는 거예요. 세상에 그렇게 정면으로 공박을 받았으니 망신도…. 귀빈으로 초청해서 갔더니 이건 실례가 이만 저만이 아니라는 거예요. 나는 뻔히 알고도 그랬어요. 그래도 이 영감은 꾸욱 참고 넘기더라구요. 나한테 그렇게 들이채이고 공박을 받고 다 그랬는데도 하늘을 보고 '하하하하' 하고 웃으며 그냥 그렇게 넘기더라구요. 아마 이박사 같으면 뺑하고 도망갔을 거예요. (웃음) 그게 차이지요. 그게 차이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영감이 옛날에 히틀러나 뭇솔리니를 만나더라도 자기 독비행기를 타고 왔다갔다할 만하다는 거지요. 체구야 작지만 거구예요. 너털웃음으로 그날 밤은 넘겼지만 들이맞았거든요. 나는 그대로 돌아오고 말이예요, 그 영감은 얼마나 생각을 많이 했겠어요? 밤에 잠을 못 자더래요, 잠을.

그러면서 우리 아가씨들이 전부 다 시중을 들고 있었는데, 들어오라고 그러더니 한국에 있는 문선생이 인물은 인물이라고, 야, 그거 넘버원이라고, 멋진 데가 있다고 그러더래요. 그렇게 굉장하다고 생각한 자기가 꼼짝못하고 당했다는 걸 가만히 생각해 보니 참 멋진 사람이다 그거예요. (웃으심) 그게 그렇게 되었다 이거예요.

사람은 그런 게 필요합니다. 그게 그 영감에게는 말이예요, 두고두고 얘기할 재료가 되는 거예요. 아무리 심각한 자리에서라도 반드시 하게 돼 있다구요. 그것이 선전인 거예요. 체면 불구하고 망신 불구할 수 있는 입장이 되면, 그 사람이 일본 꼭대기들한테도 '문선생은 아시아를 대표했소'라고 단언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거예요. 이러한 증거가 필요하다 그거예요. 그럴 땐 그런 모험도 해야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