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4집: 남북통일을 위한 성전복고 운동 1988년 02월 24일, 한국 한남동 공관 Page #80 Search Speeches

혁명은 아래 단계-서부터 - 단계로

금년 1988년 올림픽 대회를 전후해서 중요한 역사적 전환시기로 들어가게 됩니다. 외국 사람들도 많이 들어오는데 우리 통일교회에서 해야 할 것은 뭐냐? 통일교회에서도 그 일을 해야 됩니다.

올림픽 대회를 전후로 해서 7천 명의 세계 식구들이 들어올 것을 벌써 4년 전부터 얘기해 왔습니다. 햇수로 4년 됩니다. 이제는 데리고 들어와야 된다구요. 데리고 들어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활동기지가 필요합니다. 활동기지가 필요한데, 여러분의 도시 중심삼은 활동도 중요하지마는 섭리사로 볼 때는, 자연세계인 농촌에서부터 추어 올라와야 됩니다. 도시는 맨 나중입니다.

혁명운동을 하는 데 있어서는 도시부터 운동이 벌어져 가지고 지방을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저 말단단계에서부터 움직여 가지고 규합해 올라오는 것입니다. 공산당 발전단계도 모두 그랬다구요. 중공이 대혁명을 거쳐 중국을 적화한 것도 그렇게 했습니다. 모택동은 군대를 동원하여 농촌의 농민을 규합해 나오는 전술을 쓴 것입니다. 그것이 이 복귀섭리사에도 통하는 거예요.

자연과 연결될 수 있는, 자연 가운데 참 이상을 논할 수 있는 자극이 있어야 됩니다. 도시는 자극이 심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문화시설이나 모든 환경적 여건이 애국이니 민족이니 하는 개념을 생각하기에는 거리가 멀다는 거예요.

애국하려면 어떻게 돼야 되느냐? 도시는 높은 차원에 올라와 있는데, 애국하자면 떨어져 내려가서 해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도시생활이 그렇습니다. 애국하려면 말이예요, 전국을 움직이려면 이 서울만, 자기가 살고 있는 환경의 이상만을 바라면서 살 것이 아니라 농촌에 떨어져 내려가 가지고 추어 올라와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싫어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새로운 혁명운동이라는 것은 도시에 집중해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저 말단에서부터 추어 올라오는 것입니다.

여기에 신비로움이 개재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자연과 더불어 하는 것을 말합니다. 밤이면 호롱불 켜 놓고, 달을 바라보면서 서로의 얼굴이 잘 안 보이고 색깔을 분별할 수 없는 상태에서 어깨를 마주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자연과 어울리는 경지에서 모든 것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섭리적 관에 있어서도 통할 수 있는 지역에서부터 도시로 올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한 것은 뭐냐? 이런 혁명적 일을 하기 때문에 도시생활에서 모든 기준을 중심삼고 최하의 생활로 내려간 것입니다, 최하의 생활. 선생님이 복귀사명을 중심삼고 43년 동안 지금까지 맨 밑창에서부터 추어 올라온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어떻게 내려 보냈겠느냐? 선생님은 사람들을 내려 보내기가 힘듭니다. 그 사람들을 막 들이치는 거예요. 알겠어요? 하나님의 작전이 그거예요. 핍박을 받게 하는 겁니다. 도시, 저 적지에 나가 핍박을 당하니까 갈 데가 어디 있겠어요? 저 말단단계에 들어가도 가는 곳마다 들이치니까 지하조직을 준비해 연결시켜 나온 거라구요. 그러면서 상부에로 상부에로 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60년대뿐만 아니라 70년대를 넘어서도 그랬잖아요? 농촌에 들어가서 먼저 계몽운동을 했습니다. 부락에 대한 충성운동으로 우물을 파거나 다리를 놓았습니다. 그렇게 거쳐 올라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공산당을…. 공산당이 없었으면 우리가 참 곤란했다는 것입니다. 남북이 대치한 입장에서 공산주의는 세계판도를 중심삼고 총공세의 초점을 한국에 있어서 남한으로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복귀섭리의 원칙적 기반을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책임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책임을 한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