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7집: 복귀섭리의 회고 1983년 05월 01일, 한국 리틀엔젤스예술회관 Page #18 Search Speeches

본질적인 사'은 원수까지 소"할 능력이 있어

이 세상을 보게 될 때 이 세상은 타락한 세상입니다. 타락한 세상은 어떤 세상이냐? 원수라는 개념이 개재한 세상입니다. 원수라는 개념이 개재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기틀을 마련하려고 '원수를 타도해 버려라, 제거하라' 하는 그러한 논법을 만일 세웠더라면 역사시대에 인류가 남아졌을 것 같아요? '악한 놈들은 전부 다 제거해 버리자' 그랬다면…. 그것은 사랑의 본질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겁니다. 아무리 사탄 마귀라 해도 완전한 사랑 앞에는 소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불한당 같은 불효자식도 부모의 본질적인 사랑에 부딪히게 될 때는 회개할 길이 있는 것입니다. 포악한 자식도 소화될 수 있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원수를 대하는 자리에 있어서도 본질적 참된 사랑을 가지고는 소화할 수 있는 거예요. 원수가 본질적 사랑을 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사랑이 원수까지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걸 자부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종교를 통해 '나는 사랑이다. 사랑의 능력을 가졌다' 하는 이러한 표어를 세워 가지고 나온 겁니다. 그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영원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너 사탄 마귀, 있는 힘을 다 해봐라…. 그렇기 때문에 욥기에 기록된 그런 비사적 논리도 일리가 있는 거예요. 왜 하나님이 사탄 마귀를 대해 가지고 시험을 해봐라 그랬느냐 이겁니다.

사탄 마귀는 '당신의 사랑의 본질이 아무리 위대하더라도 우리와 같은 악마는 소화할 수 없소' 하고 주장하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야, 소화할 수 있어' 하시는 거예요. 이러한 배치된 역사노정이 타락 이후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세계, 이 온 역사무대에 뒤넘이치면서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이 언제나 먼저 준동합니다. 악이 먼저 우세합니다. 선은 보수적이고 악은 공격적이다 이거예요. 그걸 알아야 돼요. 그래서 이 세상의 역사 가운데에서는 악한 사람이 잘살았다 이겁니다.

잘사는 데는 사랑을 가지고가 아니라 악한 요소를 가지고입니다. 남을 지배해 가지고, 남의 생명도 끊고 기만해 가지고, 폭력을 통해 가지고, 탈취해 가지고 잘사는 겁니다. 그런 세계는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세계에 설 수 없습니다. 그걸 소화한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종교 지도자 가운데 비근한 예를 든다면 예수 같은 양반은 죄 없음을 자인하는 자신을 십자가의 길을 가게 하는, 십자가에 못을 박고 창질하는 로마병정 앞에 '저들이 행하는 것을 알지 못하니,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했어요. 그것이 어디서 나온 거예요? 지식에서 나온 거예요? 권력에서 나온 거예요? 돈에서 나온 거예요? 아니예요. 본질적 사랑에서 출현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뜻의 회고' 혹은 '구원섭리의 회고'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말하는 것입니다.

뜻의 완성을 바라왔던 하나님 시대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간 곳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겁니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소망의 자리에 근본적인 파탄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오늘날 종교 지도자들은 생각지도 않는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계획했던 모든 프로그램이 완전히 파괴당했다 이겁니다. 유린당했다 이겁니다. 무엇이 파탄됐느냐? 영원한 사랑의 이상 대상권이 파탄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오늘날 수많은 종교인들은 모르고 있다 이겁니다.

순수한 본질적인 사랑을 지닌 하나님 앞에 이상적 대상으로 그리던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떨어져 나갔을 때 하나님의 마음이 기뻤겠어요? 그건 있을 수 없는 말이라구요. 얼마나 슬펐겠느냐? 어떤 인간보다도 지극히 지극히 슬펐을 것입니다. 지극히 지극히 비통했을 것입니다. 그 내용이 깊고, 가치적인 내용일수록 비참 중의 비참이다 이겁니다. 그런 하나님이 잃어버린 자식들을 다시 찾기 위하여 구도의 길을 더듬어 나서는 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