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집: 아버지와 아들 1970년 02월 27일, 한국 통일산업 (구리시 수택리) Page #164 Search Speeches

탕감의 제물이 되어야 할 통일교인"

오늘날 통일교회도 이와 같은 작전을 해야 되겠습니다. 어찌 여러분들을 사지(死地)에 내보내서 숱한 수난길을 걷게 하고 싶겠습니까? 그렇지만 선생님이 그러한 원칙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제물로서 바쳐질 그날이 다가오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날은 제물로서의 잃어버렸던 모든 면을 찾게 되는 날입니다.

그 한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축복이라는 한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물적인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그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하면, 무한히 외로운 자리입니다. 왜냐? 하나님이 무한히 외로운 자리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인들이 전부 다 외로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거든요. 돈이 있으면 복잡한 것입니다. 지갑에 든 백 원이 총재산이고 십 원이 총재산이면 거기에 생명을 걸게 됩니다. 어려우니까 하나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십 원을 자기 소유의 전체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하나님과는 부자지간이라는 신념을 가지게 될 때 하나님을 대해서는 무한한 가치를 지닌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져야지, 시시한 기준을 바라 가지고는 탕감의 제물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가진 것이 없는 자리에서 적어도 3년 동안은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3년 공생애노정을 걸을 때 모인 무리들이 배고파하자 제자들에게 가진 것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지갑에 돈을 넣어 두고 그런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만일 지갑에 돈을 넣어 두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면 예수님은 메시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기까지 예수님은 지갑을 털어 보면서 이때 돈이 있었으면 하고 얼마나 바라겠습니까? `내게 돈이 있다면 이때에 쓸 수 있을 것을….` 하면서 얼마나 안타까와 했겠습니까? 과거에 돈을 쓴 데가 있었으면 그 돈을 썼던 과거를 후회하면서 이러한 때에 쓰지 못하는 것을 얼마나 안타까와 했겠습니까? `이런 때에 돈을 쓰지 못하면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영원히 후회될 것이다` 하는 그런 한스러운 마음을 품고 하나님 앞에 호소했기 때문에 거기에 새로운 역사가 벌어졌던 것입니다.